굽은 잣대·외압 시비… ‘독립성’ 무너진 금감원

입력 2010-07-14 21:33


출범 이후 최대 위기 직면 왜?

금융감독원이 1999년 1월 조직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금융회사 검사·감독이라는 본연의 업무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과 일관성을 심각하게 의심받는 처지에 몰렸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비슷한 사안도 시기, 대상에 따라 다른 잣대로 판정하는 일이 잦아졌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감독권 적용은 기관의 공신력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감원의 굽은 잣대는 금융계에 대한 권력의 외압수단 내지 통로로 조직이 동원되는 점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금감원 10년사’에는 금감원이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민간 기구로 설립된 이유를 ‘정치적 압력 또는 행정부 영향력에 의해 자율성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돼 있다. 이러한 조직 설립의 취지가 정치권력의 끊임없는 간섭과 금감원 자체의 눈치 보기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불공정 도마에 오르다=지난 12일 금감원은 라 회장 관련 자료를 검찰에 요청하고, 신한금융지주를 검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정보가 없고, 검찰이 내사 종결한 사안이라며 발을 빼던 입장을 180도 바꿨다. 정치권에서 금융실명법을 위반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금감원이 감싸주고 있다는 의혹을 잇따라 제기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불공정 시비에 휩싸인 사례는 강 전 국민은행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선진국민연대에 줄을 댄 것으로 알려진 강 전 행장은 지난해 12월 단독 후보로 회장직에 내정됐다.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 때 금감원은 ‘관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검사에 들어갔다. 강 전 행장의 운전기사 2명을 야간에 불러 2시간45분 동안 고강도 조사를 했다. 결국 강 전 행장은 검사가 진행되는 도중 회장 내정자에서 물러났다. 국민은행 검사결과에 따른 제재 수위는 아직 결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이후 다시 공모를 거쳐 어윤대 현 회장에게 넘어갔다. 어 회장이 후보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핵심실세의 지시를 받은 금감원 고위인사가 사외이사 등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정치권에서 제기하고 있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퇴 때에도 금감원이 등장했다. 황 전 회장은 정권 실세의 눈 밖에 나 회장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 금융권 평가다. 이 전 이사장은 친 정부 인사를 제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가 19개월 만에 사퇴했다. 그는 임직원에게 보내는 퇴임사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집요한 협박과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너진 ‘독립성’이 원인=전문가들은 13년 전과 같은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금감원 위기의 실체는 독립성과 자율성 훼손이라고 했다.

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은행 감독권한을 분리해 자율운영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 이유가 정부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다시 정부가 금융감독을 관리·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독립적, 자율적 감독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됐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현 정부뿐 아니라 금감원 탄생 이후 13년간 정부들이 뒷걸음질치게 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옛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 출신 대학교수는 “정치권에서 인사를 갖고 통제를 하니 결국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감독권을 정책적 목적에 오·남용하면서 신뢰 추락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감독기관으로서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다. 예전에는 관치금융 행태를 보였다면 지금은 정치적 배경에 따라 감독권을 쓰는 수준까지 나아갔다”고 비난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