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파워’ 눈뜨는 일본 열도… 중앙銀 128년만에 첫 女지점장·최초 女민항기장
입력 2010-07-14 18:29
선진국치곤 여성의 지위가 낮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최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은행격인 일본은행(BOJ)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지점장이 나왔는가 하면, 최초 여성 민항기 기장이 탄생했다. 동일본철도(JR) 역시 간판격인 도쿄역장에 여성을 임명했다.
일본 여성사에 획을 그을 일들이 연쇄 반응처럼 일어나자 일본 열도가 드디어 ‘우먼파워’에 눈을 뜨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사실 형편없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긴 여성평등 순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전체 134개국 중 101위에 머물렀다. 2006년 첫 조사에서 80위를 기록한 이래 해마다 미끄러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도쿄 JP모건의 가노 마사아키는 “일본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도가 낮은 편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30대 들어 결혼과 더불어 자녀를 갖게 되면서 일단 시장을 떠난 뒤엔 다시 돌아와 승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전체 임원의 1.2%로 미국(13.5%)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엔 열악한 보육시설, 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특히 경제성장의 둔화는 20대 여성들을 이전 세대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변화시켜 가정에 묶어 놓게 된다고 WSJ는 지적했다. 1986년 양성고용평등법, 92년 육아휴직법이 제정됐지만 시행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이라서 BOJ가 최근 시미즈 도키코(45)를 지점장에 앉힌 건 ‘대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BOJ의 한 간부는 “전보다 모성 휴가 등에 관대해졌다”며 BOJ의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민간분야는 더 활발하다. 지난 9일 일본항공(JAL)의 자회사인 JAL익스프레스는 후지 아리(42)를 여성기장으로 임명했다. 아메리칸에어라인에서 86년 여성기장이 등장한 미국에 비하면 24년이나 늦었지만 일본 국민들은 환호했다. 일본의 첫 엄마 우주인 야마자키 나오코(40)가 미국의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지난 4월 우주로 떠난 것에 이어 이처럼 하늘길도 여성에게 개방되고 있다.
지난 1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선 모델 출신 렌호(42) 의원이 소속 정당 민주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170만표의 엄청난 표로 재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유일하게 100만표 이상을 득표한 의원이 됐다.
속도는 느리지만 이처럼 기업, 관공서 및 정치권에서 여성이 새삼 주목받는 건 일본에서 여성노동력을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점차 추진력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실제 일본 화장품회사 시세이도는 여성간부 비율을 현행 19%에서 2013년까지 3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시세이도는 일본 기업에선 드물게 이사회 멤버에 여성이 포함됐고, 사내 보육시설도 갖추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