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구닥다리 한나라당

입력 2010-07-14 17:49


한나라당은 현재로선 희망이 별로 안 보이는 정당이다. 6·2 지방선거와 14일 끝난 전당대회를 지켜보면 더욱 그렇게 보인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168명을 가진 매머드급 정당이다. 그러나 당의 가장 중요한 일인 선거를 잘 치르고 전략을 잘 짜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당내 전략가를 꼽으라면, 아직도 2004년도에 국회를 떠난 윤여준 전 의원 얘기를 꺼내는 당이다.

선거를 잘 못 치른다는 것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표심을 읽을 줄 몰랐고,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으며 대야(對野) 전투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중앙당 차원의 고공전(高空戰)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몽준 대표 혼자 선거를 치렀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지도부 멤버들조차 자기 지역구에만 매달려 당 행사에 기여를 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당에 스타도 없고, 또 스타를 키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31살짜리 아들인 고타로 의원이 최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을 견인했지만, 한나라당에는 그런 역할을 할 신진 정치인이 안 보인다. 스타가 될 법했던 똘똘한 초선 의원들은 친이, 친박 싸움에 저격수로 동원되느라 이미지가 망가졌다. 어느 계파에도 끼지 못한 홍정욱 의원 같은 중립파 유망주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맴돌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우리도 알 수 없는 초·재선 의원들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상임위 활동을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도 드물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 활동에 제일 열심이더라”는 우스갯말이 돌아다닐 정도다. 민주당의 전병헌 박영선 최문순 이용섭,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 등은 상임위 및 본회의 활동을 잘해서 스타급 의원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지만 여당에선 재적의원 숫자에 비해 그런 의원들이 너무 적다.

당의 얼굴격인 당 대변인 및 원내 대변인단도 야당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촌철살인은 없고 무작정 싸움꾼 이미지만 강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밋밋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종종 눈물을 보이면서 대국민 호소에 나섰던 민주당 김유정 전 대변인과 같은 절절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변인 자리가 스타로 성장하는 출세 코스이지만, 여당 당직자들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전당대회를 보면 그 당의 미래가 보인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이 2년 만에 모인 자리이지만, 당원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게 하거나 단합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없이 오직 투표만 잠깐 하고 떠나게 만드는 당이다. 가족 단위로 참석하거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알찬 프로그램으로 마치 축제에 온 듯이 만들어주는 미국식 전대까지야 기대하지는 않지만, 대의원들을 투표하는 기계쯤으로 여기는 지금 여당의 전대 방식은 너무 구식이다. 그러니까, 전대가 끝나기도 전에 앞다퉈 투표하고 결과를 보지도 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뜨는 대의원들이 많은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치 신인일 때 전당대회에서 연설 기회가 주어져 일약 스타가 됐듯, 전대는 당내 유망주들을 인사시킬 좋은 기회지만 한나라당은 수억원 들인 행사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그런 대신에, 깜냥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데뽀’로 나설 수 있는 맹점을 안고 있는 게 현재의 전당대회 룰이다. 무엇보다 장기적 성장 비전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민주당이 2년 전부터 쇄신 프로그램인 ‘뉴민주당 플랜’을 착실히 준비하는 사이, 한나라당은 마냥 시간만 보냈다. 좀 허황되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조차 집권 및 당 쇄신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장기 비전이 없기 때문에 구식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다 뜯어고치기 바란다. 집권당이 망가지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