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유엔, 제 역할 하고 있나
입력 2010-07-14 17:51
“태생적 한계 안고 있다 해도 ‘종이호랑이’ 국제연맹 전철 밟아서는 안 된다”
과거 10월은 1년 중 가장 인기 좋은 달이었다. 달력의 ‘빨간 날’, 곧 공휴일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24일 유엔의 날.
그중 특이한 것은 유엔의 날이었다. 1976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된 뒤 이제는 단순한 기념일로 ‘전락’했어도 그때까지 유엔의 날은 실질적인 국경일이었다. 회원국도 아니면서 유엔 창설일을 국경일로 삼은 사례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지만 그럴 만도 했다. 유엔 주관 하의 독립정부 수립, 6·25때 유엔군 파견 등 대한민국의 탄생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유엔을 친근하게 느낀다. 더욱이 반기문 전 외교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음에랴. 하지만 유엔은 지난주 그 친근감을 저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천안함 피격침몰사태에 대한 안전보장이사회의 반응이다.
안보리는 구속력 있는 결의안도 아닌 의장성명을 채택하면서 성명에 ‘공격’의 주체조차 명시하지 못한 채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는 북한의 주장도 함께 나열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공격’이라든지 ‘규탄’이라는 문구가 들어갔고 문맥상 북한을 명시한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합동조사단 발표를 믿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그 같은 유엔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하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애당초 유엔에 기대를 건 게 무리였을지 모른다. 인도적 지원활동을 제외하고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위기를 맞아 유엔이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라는 제 기능을 수행한 것은 창설 이후 딱 한번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이다.
중동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각종 지역분쟁, 종교 및 인종 충돌에서 유엔은 속수무책이었다. 최근의 예인 2008년 그루지야 사태 때만 해도 그루지야를 침공한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평화안 합의를 중재한 것은 유엔이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유엔이 권위를 인정받기는커녕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유엔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물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즉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서 갖게 된 특권인 거부권 행사다. 절차상의 문제가 아닌 실질적인 사안에 관한 한 어느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실제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걸핏하면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엔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미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부딪히면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거니와 요즘엔 러시아 대신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미국에 맞서는 중국을 끼워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이 같은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은 유엔 헌장에 규정돼 있다. 헌장을 개정해야만 거부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헌장 개정에도 거부권이 적용된다. 유엔, 특히 유엔의 핵심기구인 안보리가 언제까지나 5대 강국의 입맛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든 대남 도발을 하든 북한을 감싸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이 판단하는 한 유엔이 북한을 견제할 길은 없다. 앞서 안보리에서 채택된 대북 결의 1718호와 1874호가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북한의 후견자 중국 탓 아닌가. 그렇게 보면 당초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태를 안보리에 상정한 것 자체가 실수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태생적인 결함이 있더라도 아직까지 유엔이 지구공동체를 대표하는 유일의 국제기구인 한 유엔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다만 유엔이 2차대전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1차대전의 산물이었던 국제연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끝에 자멸하고 만 전철을 유엔도 밟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부터 65년 전의 룰에 얽매여 있는 유엔 개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im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