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대원 (9) 여름 전도여행 떠나 놀라운 은혜 체험
입력 2010-07-14 17:16
예수전도단은 여름방학이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단기간의 전도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원칙과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를 공부했다. 전도여행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고 감사를 배웠다. 학생들과 쥐포와 오징어, 사이다를 나눠 먹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전도하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돈다.
충북 음성에 갔을 때였다. 그 지역 한 목사님 댁을 방문했었는데 간식으로 번데기를 밥그릇에 가득 담아 내오셨다. 처음 먹는 것이었다. 모두가 나에게 기도하라고 했다. “단백질 높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주여 무슨 독이라도 해가 되지 않도록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다. 번데기 13마리를 맛있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번데기를 하나씩 먹는다고 비웃었는데, 결국 그들은 새벽 4시에 설사가 나서 고생했고 난 무사했다. 그 일은 두고두고 우리들의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나는 “그러길래 기도하지 그랬냐?”고 학생들을 계속 놀려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태백 황지로 30여명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황지-광주-서울 코스로 전도여행 일정이 정해졌지만, 돈이 없어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황지역 시계탑에서 찬양할 때 양복 입은 한 신사가 다가왔다. 그는 “제가 원래 교회에 나가는데 요즘 교회를 못나간다”면서 봉투를 주었다. 열어보니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고도 남을 돈이었다. 남은 돈을 교회에 헌금할 정도로 많았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
예수전도단 선교 초기에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들이 일어났다. 그 중 ‘귀신집’이 ‘예수집’으로 불리게 된 일을 잊을 수 없다. 전남 곡성에 10명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였다. 낮에는 가가호호를 방문해 전도하고 밤에는 교회에서 복음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마을엔 ‘귀신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있었다. 우린 며칠 동안 그 집 앞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전도하지 않았다. 그 집엔 이름모를 병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노부부가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요청해왔다. 노부부는 서울에서 예수전도단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당을 부르기로 한 것을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서울대 황혜경 교수가 학생들에게 “함께 가자”했지만 학생들은 “우리 믿음이 약해 그곳에 가기가 두렵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세상의 어떤 악한 세력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후 시골교회 청년들을 포함해 15명이 ‘귀신집’으로 갔다.
좁은 방에 모두 앉을 수 없어 누워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위를 둘러서서 찬양하며 기도했다.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20분가량 기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린 다소 실망스런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3주 후 시골교회의 젊은 전도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이 깨끗하게 나으셔서 우리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계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노부부는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더 이상 ‘귀신집’으로 부르지 않고 ‘예수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