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 골프(62)
입력 2010-07-14 13:41
소심중도파의 외침 'In His Fairway'
오래 전 미셸 위 선수가 라운드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티샷이 페어웨이를 많이 놓치지 않았더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언 샷이나 숏게임, 퍼트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0년 US 여자오픈에서도 티샷 난조를 보인 미셸 위 선수가 예선에서 탈락한 것은 프로건 아마추어건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동창생 J는 구력 30년 핸디 4로 내기에 강한 전투병과의 싱글 핸디캐퍼이다. 좀처럼 70대 스코어를 놓치지 않는 그가 동기 모임에서 날씨도 좋은데, 무려 89타를 치며 허물어졌다. 프로들도 1년 중 베스트 스코어와 가장 나쁜 스코어의 차이가 20타 가까이 되니, 싱글 핸디캐퍼라도 이것저것 모두 안 되는 날엔 홀마다 1개씩 더 치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기플레이를 한 것은 어쨌든 참 특별한 현상이었다.
왜 시원한 장타의 드라이빙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가 허물어졌을까. J는 평소 240야드의 티샷이 좀처럼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는 컴퓨터 방향으로 알려져 있는 아마추어 최강자급이다. 그는 동기회 골프 총무로 봉사하며 월례모임에서 틈틈이 친구들에게 필드 레슨을 해주기도 한다. 한편 동기생 S는 핸디 9로 알아주는 장타자이나, Swinger가 아니라 Power Hitter 스타일이라 이따금 한 방씩 숲이나 깊은 러프로 티샷을 쳐넣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한 조가 되어 스킨스를 겸한 경기를 하였는데, 그날 따라 S의 티샷은 한 개도 실수 없이 평균 250 야드로 페어웨이 한복판을 가른 것이다. 평소 자기보다 더 멀리 더 똑바로 티샷을 하는 동반자들을 좀처럼 보지 못한 J는 여느 때와는 달리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그의 티샷은 난초 그림을 그리듯 좌우 전후로 중구난방 기관총 사격이 되었다. 아무리 점수는 퍼팅에 달려 있고, 티샷이 스코어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부실한 티샷으로는 절대로 좋은 스코어를 이룰 수 없다.
얼마 전 저시력 시각장애 골퍼와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골프채를 잡았던 G는 40대 중반인 지금도 260 야드의 티샷을 날린다.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그의 화려한 장타의 티샷과 나의 평범하고 초라한 티샷이 확연히 구별되지만, 실제 라운드를 마치고 그의 스코어카드를 보면 언제나 나보다 6~7타가 더 적혀 있다. 물론 심각한 저시력으로 인하여 퍼팅이나 어프로치 같은 숏게임 능력이 나보다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한 라운드에 한두 번의 티샷을 깊은 숲속으로 날려 보내기 때문이다. 훈련에 동참한 대학 후배 K는 평소 등산과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체력과 군살 한 점 없는 이상적인 체격을 가진 핸디 16의 골퍼이다. 그의 티샷은 수준급이지만, 그 역시 한 라운드에 두세 번은 좌우의 숲속으로 날려 보내는지라, 늘 스트로크 플레이보다는 스킨스 게임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에 나는 티샷 실수를 하더라도 페어웨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럭저럭 세컨 샷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볼을 보내기 때문에 나에게는 좌파(훅)나 우파(슬라이스)가 아닌 소심중도파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 방의 티샷 실수가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그립을 짧게 잡고, 내 능력보다 10%는 거리를 줄인다는 마음으로 페어웨이를 지키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투자의 달인이라는 어느 전문가가 얼마 전 인터뷰 때 한 말을 곱씹어 본다. "신기하게도 벌려고 덤벼들었을 때 잃었던 것과 달리, 단지 잃지 않겠다는 원칙에 충실하니 돈을 벌게 되었다"는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티샷은 페어웨이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게 좋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신 2:27)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