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스트레스
입력 2010-07-13 17:56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스트레스는 환경의 자극에 대한 신체의 반응으로 ‘팽팽하게 죄다’라는 라틴어인 Stringer에서 유래한다. 적당한 자극은 우리 삶의 활력소이며 목표를 달성하는 동기부여로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장에 가슴이 답답해오고 손에는 땀도 나고 입이 마르기도 한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몸의 면역기능과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어진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들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피하라고 하는데, 피할 수만 있으면 누가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소아과 전문의인 내게는 엄마의 자궁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태어난 미숙아들의 여린 생명을 지켜야 하는 스트레스가 떠나지 않았다. 미숙아들은 호흡 맥박 등 모든 것이 미숙하여 잠시라도 방심할 수 없다. 의사의 사소한 치료 행위에도 환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두려웠다. 이것은 내 인생의 위기였고, 그리고 여린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였다. 긴 터널 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에 빛이 찾아왔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대답해 주신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늘 ‘한 날의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신실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지 않느냐”라고. 염려가 있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많은 방법들과 신앙이 다른 이유는 이런 스트레스와 염려의 짐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던 날, 하나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왜 그 짐을 네가 지려고만 하고, 내게 맡기려고 하지 않느냐?” 그때 나는 주님 앞에 여린 생명을 지켜야 하는 스트레스를 내어드렸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분은 주님이시며, 나는 주님의 도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오랫동안 주님은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나와 그 짐을 함께 지어주셨다.
나의 스트레스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증거들이 된 것이다. 이런 필자의 경험이 스트레스라는 도전을 받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
이철 세브란스병원장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