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살인주·장학주·금주
입력 2010-07-13 17:49
몸무게 37㎏, 키 156㎝. 가냘픈 새내기 여대생이 대학 생활의 꿈을 펴지도 못하고 강압적인 음주문화의 희생양이 됐다. 충북 모 대학 금모(20)씨는 선·후배 대면식에서 강제로 술을 마신 뒤 하루 만에 숨졌다. 경찰은 금씨가 선배 이름을 모르면 벌주로 소주를 들이켜는 대면식의 후유증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술을 강요한 대학 선배 5명을 지난주 과실치사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금씨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는 말을 듣고도 병원 이송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 때문에 꽃다운 젊은이들이 스러지고 있다. 선배들은 전통과 통과의례라며 술을 강권하지만 금씨처럼 당하는 입장에서는 살인주(殺人酒)나 다름없다.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는 장학주(奬學酒)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다. 한 변호사의 둘째아들은 대학 때 한국사를 공부하고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둘째아들은 이 선생 집에 가서 한문공부를 하고 오는 날에는 으레 자정을 넘겨 귀가했다. 오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서 늦는 모양이라고 한 변호사는 짐작했다. 그러나 그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문공부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선생과 둘째아들이 함께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이 선생이 술을 즐기기도 했지만, 한문을 배우러 올 때마다 제자에게 술을 주었다는 것은 누구도 하기 어려운 따뜻한 정(情)의 발로였다고 회상했다. 한 변호사는 세상에 장학금은 흔하지만 제자에게 장학주를 주신 분은 이 선생이 처음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써라’(디모데전서 5장 23절)고 권면했다. 바울은 젊은 나이였지만 몸이 약해 위장병과 다른 지병으로 고생하던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권한 것이다. 실제로 유대와 헬라 사회에서는 포도주를 일종의 치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장 18절)고 권고했다. 바울이 경고한 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하는 것이었다. 과음은 몸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을 방탕한 길로 빠지게 한다. 술의 남용으로 인해 생기는 온갖 미혹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술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