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평가, 산발적 시험거부… 우려했던 대혼란 없었다
입력 2010-07-13 22:18
“시험을 못 봐도 내신에 안 들어가서 부담 없이 왔어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여의도여자고등학교. 교정에 들어서던 2학년 정연주(17)양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곧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게서 긴장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실은 시험 직전까지 소란스러웠다. 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복도까지 들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잤다.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학생은 교실마다 서너 명에 그쳤다. 이 학교에서 시험을 거부한 학생은 없었다.
전국 초·중·고교에서 실시된 학업성취도 평가는 큰 차질 없이 치러졌다. 일부 학생이 시험을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났지만 전면적 거부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다만 성적을 내신에 반영하지 않는 만큼 진지하게 시험에 임하는 학생이 드물었다. 답안을 장난으로 작성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 일원동 중곡중학교에서 1교시 시험을 마친 3학년 이모(15)군은 “문제는 다 풀고 두세 번 다시 볼 정도로 쉬웠다”며 “내신이랑 상관없어서 열심히 푸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7반의 한 학생은 “우리 반은 시험 중에도 잡담하는 애들이 있었다”며 “다른 시험 땐 이렇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등굣길에 만난 대방동 강남중학교 3학년 학생은 “오늘은 그냥 다 찍고 나올 것”이라며 “하트(♡) 모양이나 지그재그로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은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무단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서울시교육청 방침을 알고 있지만 피해를 볼 것 같아 응시했다고 했다.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서울 성산1동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에는 초등학교 6학년생 18명이 모였다. 책상 없이 바닥에 둥글게 앉은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쳤다. 성미산학교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하는 학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여 특별 현장체험학습 과정을 마련했다.
체험학습 진행을 맡은 성미산학교 6학년 사회과 백흥미 교사는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일까요’라고 적힌 쪽지를 나눠주며 자기를 소개하도록 했다. 학생들 모두 밝은 표정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학생들은 성산동 일대를 돌며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가게들을 둘러봤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왔다는 여학생은 “우리 학교는 공부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이곳은 분위기가 달라 신기하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영승씨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한 달 전부터 교장 주도로 시험 대비 문제풀이를 했다”며 “시험에 지친 아이를 위해 체험학습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대안학교 ‘틔움’이 마련한 서울 상계동 체험학습 현장에는 중·고등학생 14명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참가했다. 의자 뺏기 같은 공동체 놀이와 재활용 칠판 만들기, 향초 만들기 같은 행사가 진행됐다.
전북 지역 일선 학교는 다소 우왕좌왕했다. 전북도교육청은 “대체학습을 승인한 교사와 학교장은 중징계하겠다”는 교과부 공문을 시험 전날인 12일 발송해 혼란을 부추겼다.전주의 한 중학교는 미응시 학생 4명을 대상으로 대체학습을 하려 했으나 도교육청의 결석 처리 방침 공문을 뒤늦게 확인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다시 고사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는 시험 대상자 106명 가운데 19명이 응시하지 않고 영어교실에서 대체학습을 받았다.
강창욱 전웅빈 최승욱 기자, 전주=김용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