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아버지에게 가는 길
입력 2010-07-13 16:43
[미션라이프]‘아버지의 흔적’
인생에는 아련하게 다가오는 단어들이 있다. 아내의 주름, 아들의 뒷모습, 병든 친구, 어머니의 눈물...
‘아버지의 흔적’이란 단어에서도 아련함을 느끼다. 도처에 묻어 있지만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흔적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그리워지는 흔적이 바로 아버지의 흔적이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콘)을 읽으면서 내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의 흔적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1999년 ‘라이터스 다이제스트’가 후원하는 전미 최우수 자비출판도서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케니 켐프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담담한 문체로 아버지의 삶과 청춘, 꿈과 죽음을 들려주고 있다.
저자가 아버지의 차고를 정리하기 위해 고향집을 방문하는 장면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훈훈하고 정겨운 추억을 선사한다. 켐프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가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각인된 아버지의 모습은 목수였다. 하찮은 잡동사니들도 그 투박한 손으로 훌륭한 작품으로 만드는 목수와도 같은 아버지를 저자는 그리워한다. 각 장은 줄자, 톱, 페인트 붓 등 아버지가 사용했던 공구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켐프에게 아버지는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야 비로소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깨닫는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 자체였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잘 죽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나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탤런트 차인표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따뜻한 무게감이 가슴 깊이 전해진다. (중략) 내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내 아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순식간에 책을 읽고 나서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내 인생 도처에 아버지의 흔적이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더 많은 추억거리를 찾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다. 무언가를 결심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래서 좋은 책 이었다. 차인표와 마찬가지로 아들에게 읽게 했다.
이태형 아이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
**책에는 마음 판에 남겨두고 싶은 글귀들이 있었다. 소개해본다.
-하나님과 약속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정말로 하나님이 약속대로 처리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소중한 시간이라는 개념은 환상이다. 모든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나무를 살려서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면 절대 자르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끈질긴 것이라 불이 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가 최고의 스승이다.
-아이들을 교회에 보낼 게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
-아버지는 목수다. 이 땅 모든 아버지는.
-“나는 자신의 진가를 몰랐던 한 남자의 위대함을 침묵으로 유창하게 증언하는 초록색 합판 조각을 들고 서 있다. 아버지는 정말 목수였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느리고 어설프니 말이다. 내가 뭐라고 남들이 알아주고, 하나님이 알아주겠니? 하지만 하나님이 전에는 나를 못보고 지나쳤을지 몰라도 지금은 내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지켜보고 계실게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지 모르지. 그렇다면 겁쟁이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키기 정말 싫구나. 아버지는 실눈을 뜨고 나를 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님이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을지 없을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만큼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침묵은 백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였고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위대한 목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