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07-13 18:57


(2) 신앙이란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시25:1)

신앙은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으로 인해 내가 이루는 자기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내가 받는 은혜의 선물이다. 자기발견이나 자기성취는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선물이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이루는 것’(achieve)이 아니라 ‘받는 것’(receive)이다. 하나님 때문에 무엇인가 이루려는 사람의 관심은 자기에게 있다. 그도 역시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하나님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바라본다.

어릴 때 아이들이 커다란 개를 만나면 무서워 도망간다. 조금 용기가 있는 아이는 개를 향하여 몇 번 소리친다. 그래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보호자를 찾는다. 그러다가 엄마를 보면 눈물을 흘리며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신앙은 개와 싸우는 용기 이전에 엄마의 품에 뛰어드는 용기이다. 우리는 영웅을 숭배하는 현대적 프런티어십의 영향으로 개척자가 가장 위대하다는 잘못된 믿음 속에 산다. 그러나 개척자가 되기 전에 순종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은 개척자로 하나님을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순종자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리더십(leadership)을 배우기 전에 우리는 팔로십(followship)을 배워야 한다. 팔로십을 배우기 전에 리더십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사병이 되기 전에 나쁜 장군이 된다.

신앙인은 죄와 맞서 싸우는 고독한 영적 전사가 아니다. 신앙은 죄를 피하는 것도 아니듯이 죄와 싸우는 것도 아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패러다임이 있다. 먼저 바리새인은 여전히 짓지 말아야 할 죄에 집중한다. 그는 매일 하지 말아야 할 죄의 목록을 점검한다. 그러나 죄인은 그것을 점검할 용기도 없다. 어차피 그는 죄를 점검한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매일 죄와 싸운 바리새인은 분명 죄 속에 허우적거리는 죄인보다 낫다. 그러나 그도 역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 속에 사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개리 토마스(Gary LThomas)가 말했다. “죄를 피하는 데만 집중하는 바리새인도 사실 매일 죄에 집중하고 산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는 죄와 탐욕 가운데 산 사람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 다 죄에 집중하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는 죄를 피하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하나는 죄 속에 사는 일에 집중한다. 그들에게 공통되게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집중이다.” 죄와 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죄와 싸우는 자신보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앙은 거룩한 수동성이다.

어떤 사람은 길가밭, 어떤 사람은 자갈밭, 어떤 사람은 옥토밭일 수 있으나 밭이 밭을 살리진 못한다. 씨도 뿌려지고 비도 내려진다. 밭이 밭 자체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풍성한 수확으로 거부가 되는 꿈을 꾸기 전에 우리는 하늘의 비를 기다려야 한다. 거룩한 소나기가 내 인생에 쏟아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이윤재 목사 <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