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 모아 ‘디지털 DB’ 구축

입력 2010-07-13 19:05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4부 국치 100년, 이젠 해법 찾아야

① 일본이 배워야 할 ‘전후보상’ 교과서, 독일


모니터에서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백인 할아버지 얼굴과 상반신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알파벳 B로 시작한다. B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1923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를 다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뛰어다녔어요. 10월에 벌써 서리가 내렸는데 난 신발이 없었습니다.”

B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다. 나치 피해자다. 인터뷰 비디오는 인터넷(https://zwangsarbeit-archiv.de)에 연구자, 교사, 언론인으로 등록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나치 강제노동 피해자 590명(짝지어 인터뷰한 경우가 있어 인터뷰 숫자는 583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EVZ)’ 재단과 베를린자유대학교, 독일역사박물관이 공동 진행한 ‘강제노동 아카이브, 1939∼1945’의 결과다. 세 기관은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강제노동 피해자가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구술사 아카이브(기록보관소) 구축 작업을 시작했다.

가해국인 독일이 피해자 인터뷰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이유에 대해 베를린자유대 디지털시스템 센터의 도리스 타우슨프런트 박사는 “국가사회주의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베를린자유대를 방문, 디지털 아카이브를 직접 이용해봤다. 아카이브는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강제노동자의 현 거주지별로, 인터뷰한 언어별로, 강제노동 그룹(유형)별로, 강제노동을 한 지역별로 인터뷰를 검색할 수 있다. 영어로 된 인터뷰만 골라서 검색해봤다. 내용 파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인터뷰 전문이 문서로도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타우슨프런트 박사는 “인터뷰는 ‘날것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1인당 인터뷰가 평균 3시간입니다. 편집하지 않고 홈페이지에 올려두었습니다. 손을 대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니까요.”

각종 사진과 강제노동 관련 자료 4000여점도 일일이 스캔해 자료화됐다. B할아버지 인터뷰 동영상과 함께 그가 제출한 옛 사진과 각종 증명서를 볼 수 있다. 인터뷰는 2005∼2006년 26개 국가에서 실시됐다. 독일의 하겐 원격대학이 32개 프로젝트 팀을 가동해 실시한 인터뷰를 세 기관에 제공했다. 독일역사박물관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된 자료를 디지털 파일로 바꿨다. EVZ는 재정 지원을 담당한다.

베를린자유대 디지털시스템 센터는 최근 인터뷰 번역과 교육용 DVD 제작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좀 더 많은 독일인에게 과거를 알리기 위해 독일어로 더빙 작업을 하는 것이다. 25개 언어로 기록된 전체 583개 인터뷰 가운데 지금까지 약 150개가 번역됐다.

베를린=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