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국민은행장 정치권 ‘인사개입’ 논란 속 마지막 출근
입력 2010-07-13 00:12
“욕심만 자제했으면 큰일을 했을 분인데…. 안타깝네요.”
12일 한 금융기관 고위 관계자는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 외곽 지원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선진연대)의 금융기관 인사 개입설 논란 중심에 서 있는 강 행장이 13일 퇴임한다. 국내 최대 은행의 수장으로 5년9개월간 성공적으로 근무했지만 막판에 도전한 금융지주 회장직은 결국 ‘족쇄’가 됐다. 씨티은행 등을 거친 외국계 은행 출신이 관치가 좌우하는 한국 금융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례라는 지적도 있다. 후진적인 한국 금융산업의 메커니즘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잘 나가던 외국계 CEO=2004년 11월 강 행장은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 후임으로 선임됐다. 강 행장은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도이치뱅크한국지점 등 외국계 은행에서만 20년간 생활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등장한 외국계 은행 출신 최고경영자(CEO) 승진 행렬의 정점이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서울은행장으로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성공시켰고 흑자전환을 이뤄냈다고 해도, 그가 당대 최고 은행의 수장으로 전격 발탁된 데 대해 금융권은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강 행장은 특유의 뚝심과 업무추진력으로 ‘외국계 출신의 프리미엄’이라는 비판을 잠재웠다. 취임 이듬해 금융권 최초로 2조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이 실적은 3년간 지속됐다. 2003∼2004년 은행권 6위였던 국가고객만족도(NCSI) 성적도 2005년 2위를 거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속 1위를 달성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한국산업 고객만족도(KCSI) 3년 연속 1위, 소비자 선정 ‘대한민국 애프터서비스 만족지수(KASSI)’ 2년 연속 은행부문 1위 등 국민은행은 그의 지휘 아래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3년 임기를 마친 그는 2007년 가볍게 연임에 성공했다. 그리고 오는 10월까지 임기를 무난히 마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선진연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논란 속 조기 퇴진=KB금융지주 회장 선임 파동은 그의 입지를 단번에 흔들었다. 뱅커스트러스트(BTC)에서 직장 선후배로 함께 근무했던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그를 제치고 2008년 초대 KB지주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탄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외부 출신 인사에게 자리를 빼앗긴 그는 현 정권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다. 그는 선진연대 출신 유선기 이사장을 경영자문으로, 선진연대 후신인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조재목 사무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 손실 문제로 사퇴하자 강 행장은 회장직에 재도전했다. 그와 경쟁하던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돌연 회장 후보직을 중도 사퇴한다. 그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단독 면접을 강행하고 회장으로 내정된다. 그러나 이런 ‘속전속결’ 행보는 정권의 눈총을 샀고 결국 금융감독원의 집중 조사 도중 그는 회장 내정자직을 사퇴하기에 이른다.
강 행장의 지주 회장직 도전은 일단락됐지만 채 1년도 안돼 이번에는 선진연대의 인사개입설이 터져 나왔다. 결국 강 행장은 임기를 3개월 앞두고 불명예 퇴진 절차를 밟게 됐다. 그는 지난 5일 은행임원들과 가진 송별회에서 “새 회장을 모시고 은행을 더 큰 반석 위에 올려 달라”고 당부했다. 강 행장은 미국으로 떠나 석사과정을 밟았던 터프스대학 플레처스쿨에서 1년 정도 연수할 계획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