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 무적함대의 80년 항해… 그 꿈이 이루어졌다
입력 2010-07-12 21:31
“스페인은 바르셀로나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바르셀로나는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의 최고봉으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뛰어난 경기를 한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토털사커(Total Soccer)’의 중심으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축구 전설 요한 크루이프(63)가 한 말이다. ‘무적함대’ 스페인이 크루이프의 토털사커를 재해석한 실리축구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스페인은 1970년대 세계축구 변화를 이끌었던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네덜란드식 토털사커를 가장 현대적으로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크루이프가 있었다.
크루이프는 1970년대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스타이자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에 올려놓은 ‘오렌지군단’의 전설이다.
은퇴 후 스페인 유소년 축구에 몸담았던 그는 1988년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바르셀로나 감독에 올랐다. 크루이프는 짧고 날카로운 패스를 통해 상대 진영을 파고드는 네덜란드식 공격축구를 시도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 연속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1992년 첫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바르셀로나 감독인 호셉 과르디올라(39)는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를 지휘할 때 주장을 맡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크루이프의 수제자이자 1990년∼2001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2008년 5월 바르셀로나 사령탑에 올라선 뒤 크루이프식 토털사커를 앞세워 데뷔 첫 해인 지난해와 올해 리그 2연패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젊은 지도자다.
바르셀로나에 녹아든 크루이프의 축구는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60) 감독은 2008∼2009시즌 스페인 사상 첫 ‘트레블’(챔피언스리그·스페인 국왕컵·프리메라리가 등 우승 3관왕)을 달성했던 바르셀로나 멤버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스페인 대표 선수 23명 중 8명이 현재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이들은 대표팀의 핵심 멤버들이기도 하다.
보스케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 대회에서 ‘크루이프 축구’를 토대로 한 ‘실리축구’를 구사했다. 보스케 감독은 화려함보다는 조직력을 강조하면서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승점을 챙기는 이기는 축구를 표방했고, 이는 사상 첫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 7경기에서 8득점에 단 2실점만 하는 ‘짠물 수비’로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16강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1대0으로 승리한 것에 볼 수 있듯이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최소한의 실리축구로 경기를 지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결승전을 앞두고 “이번 월드컵은 크루이프의 축구철학을 순수한 형태로 구현한 스페인과 이기는 축구를 위해 현대적으로 응용한 네덜란드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남아공 드라마는 ‘토털사커의 서자(庶子)’ 스페인이 ‘토털사커의 적자(嫡子)’ 네덜란드에 완승을 거두며 막을 내린 셈이다.
김준동 기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