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골드워터-니콜스 법안
입력 2010-07-12 17:37
1958년 4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미 국방조직정비 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첨부했다. “각 군이 독자적으로 지상·해상 및 항공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평시 국방력을 건설하고, 군 조직을 정비하고자 할 때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2차세계대전시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지냈던 그는 미래 전쟁은 하나의 전장에서 육·해·공·해병대가 함께 싸우는 ‘합동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젠하워의 예측은 2003년 3월 이라크전에서 실현됐다. 해군 항공모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미사일과 공군 전투기들의 정밀유도미사일 공격으로 이라크군 주요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것과 동시에 지상군과 해병대가 진격, 3주 만에 실질적인 이라크 공격작전은 막을 내렸다. 물론 아직 이라크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육·해·공·해병대가 정밀한 합동작전을 펼친 초기 양상은 미래전의 전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미군 스스로도 완벽한 합동성 도달을 가장 큰 승리의 요인으로 꼽는다.
미군이 창설 초기부터 이처럼 손발을 척척 맞춰온 것은 아니다. 각 군 간 반목과 경쟁으로 공동작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독립전쟁 때인 1812년 레이크 온타리오의 해군 지휘관 촌시 대령은 “육군이 해군 전력을 자군에 예속시키려는 간계를 꾸미고 있다”며 육군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
2차세계대전시 해군과 육군은 태평양지역 지휘권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아 결국 태평양 동북지역은 해군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남서쪽은 육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게 됐다. 1944년 10월 필리핀 레이테만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해전에 니미츠 제독이 지휘하는 1개 함대와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던 1개 함대가 참여했다. 그러나 1개 함대가 위기에 처했지만 지원해야 할 다른 함대가 어디 있는지 파악되지 않아 “Task Force 34 어디 있는가?”라는 신호를 급히 보내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협조가 안 됐다.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합동참모조직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해묵은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1983년 10월 25일 중미의 섬나라 그라나다 침공 때는 육군 헬리콥터들이 해군의 반대로 함정에 착륙할 수도 없었다.
보다 못한 미 의회가 1986년 골드워터-니콜스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상원군사위원회 위원장 배리 골드워터 의원과 하원 빌 니콜스 의원이 중심이 돼 발의한 것으로 합참의장 권한 강화, 합동참모특기 신설, 합동전문교육 실시 등 합참조직을 파격적으로 강화시키는 내용이었다. 각 군의 반대는 컸다. 의회는 합동전을 이끌 합참 조직과 인원 육성을 위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물론 진전사항을 의회에 꼬박꼬박 보고하도록 군을 압박했다. 법안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미군이 현재의 합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우리 군에서도 합동성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육·해·공군이 긴밀히 협조하는 합동성을 발휘했다면 초동대처는 물론 사후대응과정도 훨씬 더 원활했을 것이라는 반성에서다. 합참 상부구조에 해·공군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고 합동교육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리 군의 합동성 강화 필요성은 818 군구조안이 나왔던 1988년부터 국방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거론됐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각 군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합동성을 이끌어내겠다는 군의 의지 부족 때문이었다. 국회가 골드워터-니콜스 법안과 같은 법을 만들 필요가 없도록 군이 이번만큼은 합동성강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최현수 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