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MB의 노무현 출구전략
입력 2010-07-12 17:38
“남은 임기 친척과 친구 잘 단속해야 노무현의 마지막 덫에 걸리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지나간 2년 반은 어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망령(亡靈)에 계속 시달린 역사다. 촛불시위를 야기한 쇠고기 협상, 종부세 감면, 국회에서 비준 동의 절차를 마치지 못하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부결로 막 내린 세종시 수정안 등이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짜놓은 틀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 정권의 주요한 통치 행위는 이른바 ‘노무현 프레임’ 안에서 이뤄졌다. 6·2 지방선거에서 중산층의 이반을 불렀다는 아파트값 하락도 전 정권에서 터무니없이 부푼 가격 거품에서 비롯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재임 중은 물론 사후에까지 국가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은 특이한 대통령이다. 재임 중 격렬한 정치적 반대를 받았지만 죽어서는 민주당까지도 경제성장 공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박정희와 너무나 대비된다. 김재규의 총탄에 맞고서 ‘나는 괜찮다’고 한 마지막 말은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할 만큼 다했다는 자기위안의 메시지로 들린다. 그러나 스스로 죽음을 택한 노무현의 경우는 비극적인 점에서는 같지만 그 영혼은 편안할 것 같지 않다. 그의 정치적 계승자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뿐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 역시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도록 일조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수뢰혐의에 대해 출석거부와 침묵으로 항변한 것은 노무현 일가 수뢰 수사를 연상시켰고 그 이미지를 앞세워 서울시장까지 될 뻔했다. 연예인 김제동이 지방선거 직전에 자신이 방송 프로에서 정치적으로 퇴출됐음을 암시함으로써 젊은이들의 표심을 충동한 일이나 방송인 김미화가 블랙리스트 설을 제기해 방송출연권을 침해당한 듯한 인상을 준 것도 현 정권을 강압적으로 보이게 했다. 민간인 사찰 파문의 진원이 된 김종익씨의 경우도 그가 노사모 회원이었다는 점에서 노무현과 현 정권의 끈질긴 악연을 떠올리게 된다.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분명 있을 터이고 그 꿈이 이뤄지길 기대한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부정한다면 사회 일각의 노무현 열(熱)을 설명할 수 없다. 노무현은 자신의 꿈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이기보다 못마땅한 현실을 비관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추측할 단서들을 뿌렸다. 그러나 광복 후 역사를 “기회주의자들이 승리한 역사”로 규정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마오쩌둥을 꼽은 데서 보듯 대단한 사상을 품었던 건 결코 아니다. MBC가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을 보다가 노무현이 꿈꾼 궁극의 세상이 조에족 사회 같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서양식으로는 원시공산사회, 동양식으로는 대동(大同)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아마존이나 경전(經典) 속에 있을 뿐이지만 정감록(鄭鑑錄) 신앙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유토피아 동경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소수의 특권계급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대동을 누리는 북한을 그런 사회라고 할 수는 있겠다.
최근의 정치 스캔들은 민간인 불법 사찰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집권 세력이 권력과 가치를 어떻게 나눠 갖고 사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MB에 투표한 보수층도 질릴 만한 정경이니 정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미움을 더 키울 것이고 노무현을 그리워할 것이다. 집권당은 지방권력의 태반을 상실하고도 계파 싸움을 그칠 줄 모르니 이대로라면 누구도 정권 재창출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정권에 남은 2년 반은 결코 길지 않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부터 ‘출구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내려놓기 싫은 권력으로부터, 노무현의 덫으로부터 탈출할. 야당에 정권을 넘겨줄 경우까지 상정한. 역대 정권의 말기에는 예외 없이 사람으로 인한 탈이 났다. 이 대통령은 이제 와서 여권에 안희정 이광재 같은 사람이 없음을 개탄할 게 아니다. 외려 힘쓰는 사람이 생길까 단속해야 할 일이다. 가족과 친구 단속은 권력 말기의 일대사(一大事)다. 만약 실패한다면 노무현은 꿈속에서라도 물을 것이다. “나는 내 식으로 책임을 졌다. 당신은?”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