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월드컵 에필로그

입력 2010-07-12 17:39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를 즐기는 축구광이다. 글에는 공의 물리학에 한없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다가서지 못하는 중년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근육의 긴장과 이완, 공간의 질주와 네트를 향한 슛의 체험은 없지만 공에 대한 관찰과 사유를 통해 축구 사랑을 전한다.



“구형은 거기에 가해진 충격에 가장 정직하게 반응한다. 이 정직성이 싸움을 놀이로 바꾸어 주는 인문적 기능을 수행한다… 축구는 몸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연대성을 확인시킨다. 이 연대 속에서 몸의 도덕성과 정직성이 살아 있다.”(김훈세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크레타의 공항 대합실에서 본 뒤에는 골키퍼의 순결을 기록했다. “제 활개를 벌린 육신은 도장을 찍듯이 땅바닥에 찍혔다. 그의 가슴은 비어 있었다. 미드필드 쪽에는 골 세리머니가 폭발하고 있었다. 돌아선 그의 어깨는 단순했다.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빛나는 어깨였다.”(공 차는 아이들)

독일 저술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를 민중의 예술로 규정했다. 스타디움, 규칙, 공, 발, 팀이 만들어내는 현장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골키퍼를 꿈꾸었던 카뮈는 “공이 기대하는 방향으로부터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축구를 인생의 학교로 여겼다. 독일 대표팀의 전설적 플레이어 우베 젤러도 “축구의 비밀은 공”이라는 단순명쾌한 격언을 남겼다. 선수들에게 둥근 공은 우연의 상징인 동시에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면 사람일 뿐 공은 늘 무죄였다.

스탠퍼드대학의 한스 굼브레이트 교수는 스포츠의 매혹을 일곱 가지로 설명했다. 조각한 듯한 육체, 죽음에 직면한 고통, 우아함, 육체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도구, 형식의 구현, 에피파니(顯現)로서의 플레이, 적절한 타이밍…. 구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단연 플레이 때문이었다. 공에 대한 통제력이 낮은 경기일수록 예측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선수의 직관에 더 의존한다. 축구는 여기에 해당하고 야구는 반대다.

월드컵이 끝났다. 승자는 스페인과 문어다. 패자에게도 신체의 환희는 남아 있다. 스포츠는 개별적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쾌감을 준다. 사회적으로는 협동과 배려라는 집단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만날 눌러앉아 보고 읽으면 뭐하나. 조기축구회라도 나갈까 싶다가도, 맨땅에 헤딩하다 안경이라도 부러지면 어쩌나 근심걱정에 싸여, 여지껏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