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부 부채’만 1683조… 영세 가구·中企 비상
입력 2010-07-11 18:30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가계부채 얘기를 꺼냈다.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던 그동안 입장과는 다소 달라진 듯한 발언을 했다.
김 원장은 “가계 부채는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에 길게 봐선 관리해야 할 상황이다. 금리 인상 때에는 영세서민이 많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29일 ‘하반기 대내외 리스크(위험) 요인’을 진단하면서 가계부채를 첫손에 꼽았다. 시중금리가 급등하면 ‘가계 및 기업 채무부담 증가→내수 위축→금융 부실’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금리 인상이라는 태풍이 닥치면서 가계·중소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태풍의 영향권에 든 빚만 1700조원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앞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은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실화한 ‘이자 폭탄’을 해소할 수 있는 ‘충격 완화제’ 찾기에 분주하다.
◇1683조4000억원=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 부채의 원금은 1683조4000억원(가계 863조6000억원, 기업 819조8000억원)이다. 이자부 부채는 금융회사에 이자를 내야 하는 빚을 말한다.
금리 상승 충격은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더 크다. 지난해 9월 정부는 ‘거시경제 안정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예금·대출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부채를 보유한 가구 가운데 소득 1분위(소득을 기준으로 1∼5개 등급으로 나눴을 때 가장 낮은 계층)는 평균 이자비용이 연간 7만원 증가하는 반면 5분위는 이자수익이 연간 45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계 대출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더니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금리 상승이 고스란히 소득 대비 이자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기업 부채는 중소기업에 몰려 있다. 지난달 현재 은행권 기업대출 520조원 가운데 83%(430조원)가 중소기업에 나간 대출이다.
◇이자 부담 깎고, 대출 늘리고=한은은 연내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폭탄’은 이제 시작이라는 소리다. 마땅한 묘안이 없는 금융당국은 늘어난 이자부담을 가계나 중소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춰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감원은 가장 문제가 심각한 주택담보 대출에 칼을 빼들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 연동한 대출 비중이 커 금리 인상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금감원은 은행이 상환 기간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상대적으로 금리 인상 충격을 덜 받는 잔액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연동 대출 상품을 더 적극적으로 개발하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또 금융위원회는 미소금융,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 희망홀씨 대출 등 서민금융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금융위는 조만간 연 10∼15% 금리의 보증부 대출을 시행할 방침이다.
보증부 대출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신용대출 상품이다.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보증을 하고, 상호금융회사(신용협동조합,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이 돈을 빌려준다.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 부담 증가분을 적극적으로 금융회사가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리 인상 영향을 덜 받는 대출 상품을 개발하고, 서민이나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를 그쪽으로 돌려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