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외환銀 ‘44년 파트너’… 악연으로 막내리나

입력 2010-07-11 22:53


한국 경제사(史)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기를 함께 넘었다. 두 차례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서슬 퍼런 군부 독재로 여러 기업이 넘어졌어도 이들은 굳건히 버텨냈다.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은 44년째 부침을 함께 겪어온 파트너였다. 그러나 지난해 해운산업 불황으로 현대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균열이 본격화됐다. 주채권은행(옛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달 현대그룹을 상대로 재무개선 약정을 맺기로 결정했다.

인연은 1967년 시작됐다. 정부는 빈약한 국내 금융 활성화를 위해 한국은행의 외환 업무를 독립시켜 외환은행을 설립했다. 일반 은행 업무도 다룰 수 있도록 했지만 자본금 100억원의 소형 은행과 거래할 기업은 많지 않았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계에서는 “빈약한 자본금을 가진 외환은행이 경쟁력이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때 국내 1위 기업이던 현대그룹이 손을 내밀었다. 한국은행과 거래하던 현대그룹은 외환은행과 거래를 시작했다. 77년 정부가 대기업 여신 관리를 위해 주채권은행 제도를 도입하자 외환은행은 영업1부 내에 현대그룹 전담반을 설치한다. 은행 업무 중 현대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직원 15명을 뽑아 한 사무실에서 현대그룹 관련 업무만 처리하도록 했다.

87년 범양상선 박건식 회장 투신자살로 대표되는 해운산업의 몰락 위기는 현대와 외환은행에 동시에 닥친 첫 위기였다. 당시 해운업체들은 은행 부채만 3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 적자에 허덕였다. 결국 정부는 해운 6개사의 주채권은행에 특별융자 1조원을 제공했고,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이던 외환은행 역시 이 덕분에 연간 3000억원의 적자 위기에서 벗어났다.

파트너십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91년 정 명예회장은 정부의 무리한 세수 추징에 대해 공개 납세거부 선언을 했다. 이때 외환은행은 시중은행에 긴급 전문을 보내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긴급 대출을 최대한 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융기관과 사기업의 ‘동맹’이 버텨내기에는 정치적 압력이 너무 거센 시기였다.

이 갈등은 92년 대선에서 정 명예회장이 낙선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현대건설 부도 및 현대 계열사의 분리가 이어졌음에도 이들은 거래 관계를 끊지 않으며 동반자 관계를 이어갔다.

2004년은 상징적인 해였다. 이 해 금융감독원은 ‘LG카드 사태’ 때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이 제 역할을 못했다며 주채권은행 일제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도 주채권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외환은행은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로 주인이 바뀐 때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주채권은행 교체를 검토했지만 외환은행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 거래 관계를 이어가기로 최종 결정했었다”고 회고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이들의 관계는 그러나 지난 6월 이후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약정을 맺으면 각종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건설 재인수를 추진 중인 현대그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의 태동부터 함께했는데도 (은행 측이) 너무 가혹한 조건을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환은행 측은 “원칙을 무시한 채 현대그룹을 무제한 지원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44년 인연이 자칫 악연으로 끝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