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옥선희]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입력 2010-07-11 19:19


한국의 영화 팬은 휴가 계획 짜는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에만도, 14일에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는 전철을 타야 한다. 8월 12일부터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9월 2일부터는 충무로국제영화제, 10월 7일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국제’가 들어간 큰 영화제가 이 정도일 뿐, 주제별 작은 영화제가 많아, 상시 영화제 개최 국가에 사는 한국 영화 팬은 행복한 특권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영화만큼 좋은 문화 향유가 없지만, 영화제 참가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직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2주일이나 직장을 비울 수 있어야 하고 교통, 숙박, 식사, 티켓 구입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계 걱정 없는 백수나 자유업 종사자가 아니면 영화제를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체력도 좋아야 한다. 하루 4편씩 강행군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영화제 당 100∼30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전문가들조차 스케줄 짜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형편이니, 영화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이들은 아니 본만 못한 영화에 돈, 시간, 체력을 축내기 십상이다.

영화제 개최 비용은 천문학적 액수에 이른다. 성공적인 영화제로 평가받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올해 국고 지원금이 15억원. 이 돈만으로는 부족하여 지자체 지원, 스폰서 유치 등으로 100억원가량의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영화제가 많고 또 규모가 날로 커지다 보니, 영화제에 대한 평가와 지원이 좌우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형편이다.

관객 입장에서 단순하게 편리와 효과만을 생각한다면, 영화제 하나 지원하는 돈이면 지역마다 예술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를 상시 운영할 수 있겠네 싶다. 시간 날 때, 필요할 때 가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가 가까이 있어야만 문화 향유, 교육, 창작이 효과적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15년 전, 영화 보고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나보다 캐나다의 대학생인 사촌이 고전 영화를 더 많이 보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학교에 라이브러리가 있어 고전 영화와 예술 영화를 상시 감상할 수 있고, 고전 영화 분석 수업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 영화광들은 비 내리는 비디오를 돌려보며 독학하던 시절이었다. 온전하고 깨끗한 필름으로 꾸준히 고전을 봐온 사촌의 영화 지식과 사고력, 창의력은 나의 그것을 압도했음은 물론이다.

영상으로 사고하는 젊은이, 창의적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젊은이를 길러야 한다고 하면서, 고전 영화 교육과 시네마테크 운영에는 관심이 덜하다. 모든 학문,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도 고전부터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운 고전 창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가장 어렵고 또 앞서가는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