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 1912년 창립, 50년대부터 분열 140여개로
입력 2010-07-11 17:26
최초의 장로교 총회는 1912년 9월 1∼14일 평양신학교에서 개최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다. 초대 총회장은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가 맡았다. 이후 1938년 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돼 훗날 교단 분열의 불씨를 낳았다. 1943년부터 45년까지는 전쟁으로 총회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9월 장로교단의 총회 회기는 95회가 된다.
한국 장로교단은 50년대 3차례 분열로 고신 기장 합동 통합 등으로 갈라졌다. 이후 70년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분열을 거듭해 현재 140여개에 달하게 됐다. 분열 원인도 다양했다. 신사참배와 친일청산 문제로 고신이, 신학적 대립으로 기장이,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견해차 및 경기노회 총대 건으로 합동과 통합이 나뉘었다.
교회사학자들은 “한국장로교단의 난립은 교권적 대립이나 주도권 문제, 지역 혹은 학연 등 비신학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으며 특히 교회지도자들과 깊이 관련돼 있다”고 평가한다. 즉 한상동(고신) 김재준(기장) 박형룡(합동) 한경직(통합) 목사 등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서양 선교사들의 교파단위적 선교나 선교지 분할정책도 분열의 원인(遠因)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분열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한국 장로교단은 축자영감설(기계영감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학적 입장이 나뉜다. 축자영감설은 하나님께서 기록자에게 글자를 하나씩 불러주셨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라 성경에 전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경무오설이 나왔다. 예장 합동, 고신, 합신은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인다. 통합은 성경무오설은 인정하지만 축자영감설은 거부한다. 그러나 기장은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모두 거부하되 성서비평학을 인정한다.
함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