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 ‘인간’ 아시아 첫 공연
입력 2010-07-11 17:26
‘개미’ ‘신’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한 권을 100분 만에 읽고 싶다면 연극 ‘인간’은 좋은 선택이다. ‘인간’은 베르베르가 쓴 유일한 희곡이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공연이 초연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요소다.
연극 ‘인간’은 베르베르의 텍스트를 착실히 관객에게 운반한다. 어느 날 한 남녀가 영문도 모른 채 유리 감옥에 갇힌다. 티격태격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짜맞추던 두 사람은 그들이 마지막 남은 인류의 남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는 멸망했다. 두 사람의 사랑만이 인류를 다시 번성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한 인류를 계속 유지할지, 사라지게 할지 재판을 벌이게 된다.
유일한 남자인 라울은 동물을 실험하는 과학자고, 마지막 여자인 사만타는 호랑이 조련사다. 한 사람은 동물을 위험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다른 쪽은 동물에게 위협을 당하는 입장이다. 이렇듯 두 사람은 모든 점에서 대척점에 선다. 베르베르는 남과 여를 최대한 극단적으로 설정해 인간의 존재가치를 묻는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베르베르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결국 자신에게 중요한 게 무엇이지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르베르의 희곡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연극의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무대는 별다른 장치 없이 비어있다. 두 사람이 100분 동안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다. 극의 초반은 가벼운 유머를 섞어가며 재미를 주지만 인간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객석 곳곳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별다른 무대장치 없이 두 사람의 실랑이만으로 전개를 이어가는 탓에 반복되는 말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를 반감시킨다. 원작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야 한다는 부담 탓인지 책의 내용을 모두 넣은 것도 같은 의미에서 연극적 재미를 감소시킨다. 8월 29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공연된다(02-747-2070).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