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대원 (6) 성령세례 후 인생·사역 방향 대전환
입력 2010-07-11 17:46
‘예수운동’ 모임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 아내와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그 첫 번째가 자유함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억눌린 자아의 해방감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사역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력의 사역’이었다면 이젠 성령님이 인도하는 ‘섬김의 사역’으로 변화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린 모든 인간적인 힘과 지혜를 다해 선교사로 일했다. 우리는 열심히 준비했고, 오랜 시간 일했으며, 주의 깊게 계획을 세웠고, 학생들의 얘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인간적인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 성령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그가 선택하는 방식대로 따라가자 우리는 두려움과 의심에서 자유로워졌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갔다. 우리는 방언으로 말하고 기도하며 노래하는 축복을 받았다.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다른 은사들이 우리 삶에서 활동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은사라고 믿는다. 방언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주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다. 우린 방언기도를 통해 주님과 영적으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선교사역의 방향이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교사로서 한국인을 섬길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열방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는 새로운 곳에 대한 흥분과 모험이 있었다면 ‘이제 이 나라는 내 나라, 내 땅이며 이들은 나의 백성’이라는 확실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선교사를 만드는 선교사가 되리라.” 1972년 6월,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사역의 주된 방향은 선교사를 훈련시켜서 타 민족들에게 파송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어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창 12:2)는 말씀처럼 한국인들이 복의 근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겼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은 사실을 가장 먼저 나누고 싶었던 사람은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이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우린 그와 나눠야만 한다고 느꼈다. 1961년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지적인 능력과 예수님에 대한 열정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러나 당시 성령에 대한 그의 설교를 받아들일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찬양할 때마다 손을 높이 드는 그의 모습이 장로교 목사의 눈에 이상하게 비춰지기도 했다. 당시 성령에 대해 내가 올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강원도 깊은 산속에 있는 예수원을 찾아갔다. 대 신부님을 만나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가 성령체험을 한 것을 알고 계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기도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께 로스 목사 부부를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차고 넘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당신들이 성령을 체험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대 신부님과 맺은 인연은 예수전도단을 설립한 이후에도 지속됐다. 대 신부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예수전도단에 와서 강의를 해주셨고, 예수전도단은 전도학교를 예수원에서 한 달간 여는 등 두 단체는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대 신부님은 기꺼이 나의 멘토가 돼주셨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