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시카고 수양회장을 떠나며
입력 2010-07-09 21:09
휘튼칼리지 캠퍼스가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독자님들께 한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하면서 “코스탄들의 도전과 열정을 남김없이 전하겠노라”장담했던 약속을 다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의 선교역사를 훑으면서 “위대한 명령 앞에 위대한 순종이 있기를” 도전했던 홍정길 목사님, “조국 한국과 디아스포라들에겐 새로운 조국이 된 미국, 그리고 땅끝을 향해 나아갈 사람은 어디에 있나”라고 호소했던 이동원 목사님의 절절한 수양회 마지막 설교는 채 기사로 다루지도 못했습니다.
매 밤이 그랬지만 어제 마지막 밤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줄을 지은 수백명의 청년들이 단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앞으로 2년간 선교지에 나가기로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4박5일 수양회가 끝나는데도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20여명의 청년들은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다”며 이동원 목사님을 따라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또 다른 감동은 섬김이었습니다. 잘나가는 한국의 국책연구원은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이곳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를 해도 모자라지 않지만 그는 수양회 기간 영아반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하루종일 아기들을 보듬어 달래느라 그의 팔엔 여기저기 파스가 붙어 있었습니다. 국내 유명 의대 교수 역시 자비를 들여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하는 일은 하루종일 의무실에 대기하면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대학 총장에서부터 교수에까지 강사나 자원봉사자의 이력은 화려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불평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의 얼굴은 홍정길, 이동원 목사님입니다. 하지만 코스타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간사들입니다. 이들은 풀타임이 아닙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직장인이거나 학생들입니다. 빨간 조끼를 입은 이들은 수양회 기간 내내 안내와 차량 봉사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수양회 한번을 섬기기 위해 이들은 1년 내내 큐티, 독서 등을 훈련받는다고 합니다. 수양회 참석하기 위해 드는 100만원 가까운 비용도 기꺼이 부담했다고 합니다.
이들 중엔 비자가 연장이 안되면 언제든 한국으로 쫓겨가야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생활비가 없어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꺼이 코스타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헌신의 깊이 또한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코스타 수양회 주제 하나를 정하기 위해 1년에 100권이 넘는 독서를 하며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고 합니다. 한번 토론이 시작되면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보통이라고 합니다. 수양회 기간에도 선후배 간사들이 모여 새벽 3~4시까지 토론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정의, 바람직한 선교, 한국 교회의 방향 등 어느 하나 가벼운 주제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존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이들은 조국과 땅끝을 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직장에 다니는 한 선배 간사는 카이스트 교수 제안이 들어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버리면 더 이상 코스타를 섬길 수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끈끈한 선후배 관계와 치열한 토론과 고민의 모습은 마치 1970~80년대 한국 대학가의 운동권을 연상시켰습니다.
한국의 기독청년들 또한 청년실업에 인생과 신앙에 대한 고민 때문에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이 현장에 있었다면 한인 청년 디아스포라의 열정과 헌신에 뭉클한 감동을 느꼈을 겁니다. 25년의 역사 동안 코스타가 곳곳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고국에 돌아가 시간 나는 대로 이들을 기사화하려고 합니다. 혹시 힘이 미치지 못해 텍스트로 이들을 다 담아낼 수 없다면 가슴 속 이미지로나마 선명하게 간직하려고 합니다. 저 또한 코스탄의 치열함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시 보게 됩니다.
7월 9일 아침, 휘튼칼리지에서 김성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