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동 초등생 성폭행 14일째… 혹시 저 청년? 온동네가 뒤숭숭
입력 2010-07-09 18:42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14일째인 9일 오전 서울 장안동 주택가. 피해자 A양의 집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담장 너머로 A양의 분홍색 두발자전거가 보였지만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다세대주택과 소규모 가공업체가 즐비한 장안동 골목길은 인적이 뜸했다. 골목 어귀에서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던 주민은 “여름엔 이웃끼리 이집 저집 드나들며 지냈는데 (용의자가 찍힌) CCTV 영상이 공개된 뒤로 다들 대문을 안 열어. 범인이 동네 주민이라고 하니까”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범인이 동네 어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방범용 CCTV에 잡힌 용의자 모습을 8일까지 두 차례 공개하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A양의 집에서 20m쯤 떨어진 곳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신광자(69·여)씨는 “이 동네에서만 30년을 살았는데 요즘처럼 불안한 적은 없었다. 젊은 청년만 보면 용의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학교 1학년 최진희(13)양은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범인이 쫓아올까봐 깜짝 놀라 피한다”며 “밤늦게 학원이 끝나면 엄마가 꼭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범인이 반드시 주민 가운데 있다’는 식의 속단을 경계했다. 범인이 동네 지리에 밝다고 주민만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통장 박정일(54)씨는 “범인을 동네 주민이라고 한 게 문제”라며 “그건 우리 동네 사람을 모조리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꼴”이라고 못마땅해했다. 맞은편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설양임(60·여)씨는 “범인이 동네 주민이라고 소문내면 그 옆에 사는 사람들은 다 범죄자로 몰리지 않겠느냐”며 이웃 간 불신을 우려했다.
오토바이를 모는 20대 남성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지난 6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용의자의 뒷모습 영상이 공개되고 주민들에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고 있는 탓이다. A양의 집 인근 상점에서 과일과 야채를 파는 남성은 “며칠 전 찾아온 형사들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 아느냐’고 물어볼 때 우리 종업원들을 의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이곳 종업원들이 배달할 때 타는 오토바이에는 용의자가 몰았던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노란 바구니가 달려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서 물건을 배달하러 들어오는 오토바이가 매일 수백 대는 된다고 말한다. 동네에 공구업체나 봉제공장이 많기 때문이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