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10대 4’ 스파이 맞교환 합의
입력 2010-07-10 00:25
“내 인생은 스파이 맞교환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1969년 10월 영국과 옛 소련 당국은 긴밀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소련 공산당은 영국 와이트섬 파크허스트 감옥에 수감돼 있는 자국 스파이 피터 크루거와 헬렌 크루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영국 내각은 자국 청년 제럴드 브룩과의 교환을 요청했다. 언뜻 영국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한 듯 보였다. 소련의 스파이는 오랜 경력을 갖춘 우수한 스파이였지만 제럴드 브룩은 반러시아 서적을 러시아에 들여보내려다 5년 형을 선고받은 젊은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소련 정부는 또 다른 선물을 내놨다. 소련 시민이 영국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8일(현지시간) 당시 스파이 맞교환의 덤으로 성사된 러시아 여성과 영국인 남성의 결혼으로 태어난 남성의 기고를 실었다.
당사자인 오웬 매튜씨는 “소련 총영사는 풀려나기로 했던 소련의 스파이가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서 안전하게 떠난 뒤에야 아버지에게 비자를 건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아버지는 소련에 있을 때 어머니와의 결혼 허가를 받기 위해 6년간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매튜씨의 부모는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바로 결혼식을 올렸고 2년 뒤 런던에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전했다.
매튜씨는 “41년 만에 (스파이 맞교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면서 자신의 출생 이야기를 언론에 기고한 배경을 설명했다.
AP통신 등 외신은 미국과 러시아가 이날 미국 내 러시아 스파이 체포 사건과 관련해 스파이 맞교환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냉전 시대 이후 최대 규모다. 이어 9일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는 각각 스파이를 실은 미국 측과 러시아 측 비행기가 나란히 착륙해 있는 모습이 목겼됐다고 BBC는 보도했다.
서방 언론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대 러시아 관계 재설정, 핵무기 감축, 이란 핵프로그램 저지, 아프간 전쟁 보급로 유지 등에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해 이 같은 포로교환이 성사된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미국의 지지가 절실해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양국은 미국에서 체포된 러시아 스파이 10명 전원과 러시아에서 서방 정보기관과 접촉한 혐의로 구금돼 있던 4명을 풀어주기로 했다. 러시아인 4명은 핵잠수함 기술 등을 미국에 빼돌린 혐의로 15년형을 받은 이고르 수티아긴, 영국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은 세르게이 스크리팔, 알렉산더 자포로즈스키, 제나디 바실렌코 등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합의 이행을 위해 ‘플리바기닝(유죄인정 조건 형량 감경)’과 대통령 사면 형식을 취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