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인 150여명 아름다운 ‘제주 동행’
입력 2010-07-09 18:16
제주도의 한 관광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줘도 시큰둥한 관광객들 사이로 유독 까르르 웃는 소리가 넘치는 그룹이 있었다. 두 할머니는 손을 맞잡으며 “친목계에서 몇 번 와 봤지만 이렇게 재미진 적은 처음이야” “행복하다, 행복해 참말로!” 하며 웃었다. 동두천동성교회 경로비전여행팀이었다.
이 교회 70세 이상 성도 90여명은 6∼8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 바닷가의 특급 호텔에서 묵고, 맛집에서 식사하고, 관광지를 유람했다. 그런데 이들이 좋아한 ‘여행 포인트’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60여명의 20∼30대 청년들과 20여명의 여전도회원들, 10여명의 교회 사역자들이 곁에 바짝 붙어 다니며 일일이 돌봐주는 점이다. 특히 ‘손자며느리, 손녀사위 삼고 싶게 예쁜’ 청년들이 팔짱을 낀 채 안내하고 말을 걸어 주니 노인들은 마치 함께 젊어진 듯 허리를 쭉 폈다.
이 여행은 지난해 말 청년부원들 스스로 구상했다. 권성희(35) 간사는 “교회 어르신들이 예배 때마다 청년들을 기도제목의 맨 앞에 두고 기도해 주신다”면서 “그 덕에 청년부가 부흥했고 국내외 단기선교 때마다 고비를 쉽게 넘겨 왔으니 이번에 그 은혜에 보답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요 비용 7000만원은 청년부 재정으로 부담했다.
여행 소식을 들었을 때 노인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손순자(81) 집사는 “몸이 안 좋았지만 용기를 내서 왔다”면서 “참가자 태반은 이번에 비행기를 처음 타는데, 청년들이 가자고 한 여행이 아니었으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전했다.
6일 저녁 호텔 연회장에서는 청년들이 몇 달간 준비해 온 공연이 열렸다. 반짝이 옷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다 “고마, 손 한 번 잡아주이소!” 하는 손자들에 함박웃음을 짓는 권사님들, 손녀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구성지게 타령을 부르자 일어나 어깨춤을 추는 집사님들, 신나는 댄스 공연에 신경통도 잊고 펄쩍펄쩍 뛰는 원로장로님들…. 한 70대 여집사는 “내 아들 딸보다 낫다!”고 소리쳤다.
마지막 순서로 손을 맞잡고 축복하며 기도를 하고 나자 누구의 눈에나 눈물이 맺혔다. 성소연(20)씨는 “준비하는 동안은 소통이 잘 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와 보니 생각보다 너무 잘 따라 주시고 좋아해 주신다”면서 “전에는 교회에서 어르신들 만나면 목례만 했지만 앞으로는 ‘절친’으로 지낼 것”이라고 했다.
사회자의 “여러분들, 예수 믿은 것이 행복하죠?” 하는 물음에 모두 큰 소리로 “아멘!” 했다. 대형 교회 부럽지 않고 그 어떤 고가의 효도관광객에 비해도 어깨가 으쓱한 순간이었다.
김정현 담임목사는 “청년들이 제대로 서야 세상에 희망이 있다. 한국교회 희망을 이 자리에서 발견한다”면서 “청년들이 노인을 공경하고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가장 목마르게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이 교회에 부임한 후 2명에 불과하던 청년부를 300명으로 부흥시킨 비결에 대해 김 목사는 “바로 이 자리가 그 답”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의미 있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섬기는 기쁨을 알려 주면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교회에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제주=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