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25년-(하) 창립 주역 이동원·홍정길 목사에게 듣는다] 코스타는 섬김의 역사
입력 2010-07-09 17:31
코스타(KOSTA)는 1986년 출범 당시부터 한인유학생 대상 복음 전도, 민족의 리더십 양성, 선교자원 개발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졌다. 당시 미국에서 목회하던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가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를 만나 이 같은 취지를 밝혔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이후 두 사람은 코스타의 주강사로, 때로는 후원자로 참여하면서 코스타를 적극 지원해 왔다. 코스타 창립의 산파역할을 했던 홍·이 목사를 지난 6일 (현지시간) 2010 시카고 코스타 수양회가 열리고 있는 휘튼칼리지에서 만났다.
-코스타 25주년의 의미를 평가해 달라.
△홍정길 목사=선교역사학자 패트릭 존스톤은 한국 기독교 135년 역사에서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는 하지 않았던 두 가지 일을 거론했다. 하나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새벽기도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86년부터 시작된 코스타다. 우리도 코스타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83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유학생 30여명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고, 이 목사는 워싱턴DC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들이 1회 코스타의 주축을 이뤘다. 코스타는 한국 유학생이 증가하던 시절에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영적 운동이었다.
△이동원 목사=유학생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코스타가 유학생 전도에 기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신앙을 부여함은 물론 가치관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에 대해서도 결정적 영향을 줬다. 우리가 기도했던 대로 좋은 리더십들도 나온 것 같다. 남북 평화통일에 기여하고 있는 윤영관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각 대학에 흩어진 코스타 출신 교수들이 굉장히 많다. 코스타가 상시적인 기관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유학생들에게 꾸준히 영향을 미쳐온 것을 감사한다.
-초창기 코스타를 돌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홍 목사=5회 수양회까지는 거의 눈물로 보냈다. 당시 한국의 대학가에는 독재정권과 투쟁하느라 분신자살이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도 열악했다. 특히 6월 민주항쟁의 시기인 87년 6월 초순에 열린 2회 수양회는 거의 통곡 속에 진행됐다. 모두가 잠도 안 자고 울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후 6·29 선언이 발표됐다.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 목사=한국의 근세역사는 유학생들에 의해 리더십이 세워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유학생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조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조국을 섬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강조했다. 복음이 중요했다. 수양회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게 ‘복음이란 무엇인가’였다. 수양회엔 해마다 20% 정도의 비신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도록 초점을 맞췄다.
-코스타의 대상과 지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홍 목사=일본에서 열리는 코스타는 한국 학생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학생도 참여한다. 한국 내 중국 유학생들이 ‘차이스타’도 열고 있다. 추석 명절 때마다 열린다. 음식 사먹을 데가 없는데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수양회를 갖는다. 유럽 코스타는 독일 유학생들이 주축이 됐다. UBF 출신들이 양육하던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온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코스타는 계속에서 영적 재생산을 하고 있다.
△이 목사=지금은 25년 전과 사정이 달라졌다. 조기 유학생들이 많아졌다. 이들을 위한 유스코스타도 하고 있다. 지역마다 부모들이 얼마나 후원을 잘해주는지 모른다. 심지어 강사비까지 지원해 준다. ‘영적인 치맛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 수양회 때는 갓난아기로 유학생 엄마에게 업혀 왔던 아이가 대학생이 돼 간증하기도 했다. 앞으로 코스타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스타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복음주의 학생운동’이란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목사=코스타는 자원봉사자들이 주축이 돼 이끌고 있다. 당분간은 조직보다는 무브먼트(운동)로 존속할 것이다. 난 몇 년 후 코스타가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만큼 하나님이 원하실 때까지는 계속 쓰실 거란 얘기다.
△홍 목사=그걸 위해서라도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가난하고 진지하다. 구도적 자세가 돼 있다. 앞으로 이들이 한국의 기독 학생운동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이들을 잘 끌어안고 그들의 잠재력을 잘 개발해줘야 한다.
-기독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모임이 있다. 이런 가운데 코스타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홍 목사=코스타 수양회에는 대접받으려는 강사들은 절대 올 수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코스타가 양질의 강사를 확보한 중요한 기준이 됐다. 전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원봉사자들도 코스타만의 특징이다. 이들은 좋은 직장을 다니지만 때로는 해고를 각오한 채 1주일씩 휴가를 내고 참여한다. 그렇게 헌신적일 수가 없다.
△이 목사=모든 강사가 사례비 안 받고, 스스로 경비를 부담하며 참여한다. 부족하면 오히려 헌금을 내고 간다. 최근 한국에도 이런 모임이 몇 개 생기긴 했지만 코스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코스타에 오면 진정한 섬김이 있다. 강사나 자원봉사자, 학생 리더 모두가 섬김의 본을 보이고 있다. 겸손과 함께 상대편을 향한 깊은 배려를 보여준다. 이것이 코스타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한다.
-코스타가 5년 전부터 민족이란 개념을 열방으로 확대했다. 지경을 넓힌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통일에 기여할 일꾼들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있을 텐데.
△이 목사=그때 유학생들이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디아스포라로 그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게 오히려 하나님나라 확장에 기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바람직한 애국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민족과 세계선교는 둘 다 중요하다. 국수주의가 아닌 건강한 민족 정체성을 가질 때 세계선교도 잘 할 수 있다. 이번에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코스탄들을 만났다. 그들은 “코스타에 와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코스타의 역할은 앞으로도 클 것이다.
△홍 목사=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겪어봤다. 기적을 만들어낸 민족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소중한 경험을 다른 민족을 위해 섬기는 일에 쓰시길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식민지 정책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서구식 선교와는 다르게 선교할 수 있다. 선교 현장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코스타를 통해 양질의 선교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남북통일이라는 한국 교회의 사명에도 코스탄들이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시카고=글·사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