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내… 우영창 장편소설 ‘성자 셰익스피어’
입력 2010-07-09 17:42
인간은 늘 자신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순간과 대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나는 구질구질한 인간’이라고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2년 전, 제1회 ‘문학의문학’ 장편 공모에 ‘하늘다리’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우영창(54)씨가 두 번째 장편 ‘성자 셰익스피어’(문학의문학)를 펴냈다. 작중 주인공 조한도는 한 계절을 외투 하나로 보내고, 짝사랑하던 여인이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아내의 아이디를 도용해 자신을 험담하는 글을 올리는 인물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였으나 이제는 생활비도 안 나오는 기원을 운영하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도, 기대해 볼 미래도 없는, 그는 하나뿐인 아들의 학원비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를 비참하게 느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스스로 ‘성자’ 되기를 택함으로써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다.
극소수의 예외를 뺀다면, ‘성자되기’란 어쩌면 돈도 힘도 없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닐는지. 돈 좀 벌어보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바가지 차원을 넘어 존재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느껴지지 않았다면, 조한도도 모든 모욕에 대해 인내로 버티는 성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을 터다. 세상이 요구하는 체면으로부터 초연한 것이 성자의 특징이지만, 체면을 챙길 만한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었더라도 조한도는 성자가 되려고 했을까. 조한도가 택한 ‘성자되기’는 세파에 시달리고 할퀴어진 중년이 더 이상의 상처를 거부하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성자되기’는 성공했을까? 마지막 장을 펼치면 이 책이 실패한 인생에 대한 구태의연한 변명도, 어차피 그렇게 된다는 식의 자포자기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내는 약자의 미덕이겠으나 인내하는 자는 남들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법이다.
자칫 지루하게 흘렀을 이야기를 구해주는 것은 비꼬기와 해학이 넘치는 간결한 문장이다. ‘그럼 조한도는 벌써 시내버스를 탔는가? 그렇지 않았다. 조한도는 기원 외의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떠나지 않는다! 무릇 남자는 그런 배짱도 지닐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주를 꿈꾸는 주인공을 그린 대목이다. 우영창씨는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는 진지한 문체로 다루면 이중으로 무거워지는 느낌이 있어서 해학적인 문체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이력도 흥미롭다. 2008년 52세의 나이로 등단한 늦깎이 문인이다. 등단 전에는 문예창작학과 출신의 증권맨이었다. 문학에 대한 꿈을 안고 녹록치 않은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이 창작의 원천이 됐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흘러넘치는 행간의 유머는 웃고 넘겨버리기엔 불편하게 다가온다. 돈벌이에 찌든 등장인물들의 구질구질함은, 되짚어보면 결국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글=양진영 기자, 사진=이병주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