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강의 위해 뉴질랜드서 고국에 온 르네 씨 “전시용 작품 아닌 즐기는 퀼트를 하세요”

입력 2010-07-09 17:39


찬바람 쌩쌩 부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땡볕 내리쬐는 대한민국 서울로 날아 온 그녀는 지난 일주일간 두 번 울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그녀가 화장대 앞이 아닌, 여러 사람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은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굳이 눈물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퀼터다. 이름은 르네다. 본명은 김혜영(46). 2002년 2월 이민을 간 그녀가 서울에 온 것은 뉴질랜드교육문화원 초청으로 퀼트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 2일 첫 강의를 했다. 그녀의 강의를 듣기 위해 지방에선 물론 캐나다에서까지 날아온 이가 있었다.

첫 번째 울음은 이 강의가 끝나고 ‘르네의 온라인퀼트클래스’ 카페(cafe.naver.com/nzrenee) 회원들과 가진 첫 정모(정기모임)에서 터졌다. 6월말 생일이었던 르네를 위해 깜짝 파티가 열렸다. 온라인에서 무료 강의를 들은 왕초보 퀼터 31명이 ‘우정퀼트(여러 명이 한 조각씩 만들어 완성한 것)’를 선물했다. 제목은 ‘당신은 우리의 별이십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녀가 두 번째 눈물을 흘린 것은 6일 오후였다. 2일 강의에서 퀼트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제자들을 위해 ‘번개(갑작스런 모임)’를 가진 자리였다. 10여명이 나왔다. 마지막 사람이 바늘을 내려놓을 즈음 르네샘과 제자들은 어느새 자식 키우는 엄마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자녀 교육. 뉴질랜드에서 어학공부를 위해 홀로 온 아이들의 공식 후견인(가디언) 일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조기유학 어학연수 등등에 대해 물었다.

“절대 아이들만 보내선 안 돼요. 부모가 같이, 아니면 엄마가 꼭 같이 와야 해요. 비용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캠프는 좋아요. 귀가 뚫리니까.”

샘도 아이들 때문에 가셨어요? 아이들이 몇 살 때 가셨어요? 아이들은 성공했나요? 영어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질문이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아이가 4학년 때 갔어요. 지역신문을 딸딸 욀 만큼 보고, 늘 현지 방송을 틀어놨더니 귀와 입이 열렸어요. 우리 큰애는 대학을 포기했어요. 그렇지만 잘 갔다고 생각해요.”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르네의 두 번째 울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르네는 큰아들 얘기를 했다. 난산으로 산소가 부족해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 아이는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었고, 담임선생님마저 외면했다. 르네는 이 땅에서 일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그 아이를 위해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 그녀는 잘나가는 퀼트 강사였다. 기러기아빠가 된 르네의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다. 잘 안 풀렸고, 설상가상으로 보증을 선 친구까지 망했다. 르네와 두 아들이 뉴질랜드에 간 지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송금은 끊기다시피 했다.

“어깨가 엉망이에요. 퀼트를 해서가 아니라 그때 웨딩드레스 다림질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주말에 아이들과 고물차를 타고 혹시나 하고 현금지급기를 찾아 간다. 아이들은 돈을 찾아 대형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뜬다. 하지만 잔고는 바닥.



“형 몫까지 하느라 일찍 철이 난 둘째 아들이 얼마 전 그러더군요. 그때 돌아서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돈이 안 온 것을 알았다고요.”

그리고 르네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개성강한 퀼터, 글 잘 쓰는 퀼터, 옷 잘 입는 퀼터로 오클랜드 신문에까지 소개된 르네는 큰아들이 자신의 버팀목이라고 했다.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다가도 그 아이를 생각해 힘을 낸다는 그녀. 르네는 자신의 속내를 블로그(blog.naver.com/pinewheel)에 털어놓고 있다. 퀼트 패션 인테리어 앤틱 등 그녀의 밝은 눈썰미와 재치 있는 언어로 풀어낸 글들이 그득한 그의 블로그는 올 6월초 누적방문객 수가 155만명을 넘어섰다.

“블로그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어요. 나에겐 일기를 적는 스프링노트고, 가슴 속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쉼터죠.”



올해부터 해마다 고국에서 퀼트 강의를 할 계획이라는 르네는 ‘번개’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퀼트가 아니고. 쓰면서 즐길 줄 아는 생활퀼트를 만드는 퀼터가 되자. 남의 것을 퍼갈 때는 출처를 밝히는 블로거가 되자. 그리고 자식들을 기다려주고 주관이 있어 흔들리지 않는 어머니가 되자.

궁금한 이들을 위해. 르네의 남편은 2005년 뉴질랜드로 들어갔다.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가족들을 위해 스시 만드는 법을 배워 스시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