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가수로 다시 태어난 '작은 여인들' 권태수 집사

입력 2010-07-09 14:46


[미션라이프]‘7080 스타’ 권태수 집사의 ‘예수와의 만남-Beofore & After

“안녕하세요? 복음가숩니다.”

“예?”

“7080세대’들은 저를 기억하시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모를 겁니다.” 하얀색 상의 양복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왕년의 스타 권태수(서울나들목교회 집사)씨였다. 그는 1974년 이종환씨에게 찍혀(?) 서울 종로의 쉘브르음악감상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76년 ‘님으로’라는 음반을 냈고 이듬해 말엔 동양방송(TBC)에서 ‘눈으로’를 불러 남자 신인 가수상을 탔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어라…” 권씨의 노래 중 ‘작은 연인들’은 MBC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애절한 선율의 여가수 김세화와 듀엣으로 불렀다. 이 노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기타를 치며 불러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권씨는 이 밖에 ‘아기곰’ ‘소녀의 꿈’ ‘그 소녀’ ‘당신을 볼 때마다’ ‘파파’ 등 100여곡을 불렀다.

그가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6세 때 전북 익산의 안동 권씨 집안에서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커다란 주사를 맞더니 그만, 병풍 뒤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그런데 큰 누님이 교회 사람들을 불러와 예배를 드렸는데 사흘 만에 일어나셨어요. 나중에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만신)무당이 돼야 하는운명인데 거부해서 많이 아팠다고 하더군요.”

11세까지는 찬송가 경연대회에도 참가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통 172)를 불렀는데 그만 중간에 가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창피스러웠다. 이날부터 권씨는 33세까지 교회 가는 발길을 끊었다.

스타들의 인기도 한나절 구름만도 못했다. 70년대 말 한 방송국이 주최한 10대가수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석연찮은 이유로 다른 이가 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낙심한 그는 틈만 나면 서울을 벗어났다. 그러다가 결국 2번이나 대형사고를 쳤다. 처음은 경부고속도로 죽전 휴게소 근처였다.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가수 윤수일씨의 차를 추월해 휴게소에 들어가다가 그만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화물 트럭을 들이 받았다. 하지만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1년 후에도 강원도 춘천 MBC방송국에 다녀오던 길에 또 일을 냈다. 경기도 가평쯤에서 이종환씨의 차를 앞지르다가 도로 옆 가정집을 덮쳤다.

교만의 결과였다. 간판 프로그램 ‘노래하는 곳에’는 이덕화씨에게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자동차공업소에서 한 번 본적도 없는 자매를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권태수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몇 번이나 큰 사고를 당했지만 살려주신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교회에 나가세요.” 그녀는 족집게처럼 권씨의 과거를 맞췄다.

그날부터 서울 시내 교회를 찾아다녔다. 83년 3월 마침내 서울 동부이촌동 충신교회(박종순 목사)에서 세례를 받고 복음송을 부르는 가수로 새로 태어났다. ‘내 모습 이대로’ 등을 지었다. 그러면서 2가지 기도를 했다. 먼저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곧바로 응답이 왔다. “박종순 목사님이 당시 주일예배에서 요즘 무명으로 30만원을 새 돈으로 십일조를 하는 성도가 있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 주인공이 저였어요.” 또 한 가지는 평생을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시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역시 이 소원도 들어주셨다. 예전부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어머니가 89년 위암으로 또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권씨는 어머니를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간단한 수술 끝에 15년 동안 더 사시다가 6년 전에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는 인터뷰 하는 동안 부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가 돌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저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고무신에 손톱만한 흙이나 티가 묻으면 난리가 나는 그런 분이셨다고 들었어요.”

그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알게 된 때는 79년도이다. 쉘브르에서다. 이종환씨가 권씨에게 번안곡 악보 한 장을 건냈다. “야, 태수야, 네한테 딱 맞는 노래다. 한 번 불러봐라.” ‘파파’(아버지·Papa)였다. 3대에 걸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폴 앵카가 부른 노래였다. 그는 웬만해서 자신의 곡을 직접 부르는 경우가 없는데 이곡만큼은 직접 부를 정도로 사랑하는 노래였다.

기타를 잡은 권씨는 단숨에 끝까지 불렀다. 단순한 팝송이 아니었다. 그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해가 뜨나 해가지나 오직한마음 비가 오나 눈이오나 오직한마음 자식하나 잘되기를 오직한마음…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잊으리 잊으리 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잊으리∼”

그는 하나님 아버지 곁을 떠나 세상 속에 헤맬 때에도 자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세상 노래를 부르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상처 입은 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복음사역을 감당 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있다. 변진섭, 최성수씨 등 동료 가수들을 전도했다. 그가 전도한 후배 가수들 중 송대성, 박춘삼, 이훈만씨는 목사가 됐고 김용학씨는 전도사가 됐다.

요금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이종환, 이태원, 김세화, 남궁옥분씨 등 40여 명을 위해 매일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권씨는 2개월 전에 만든 CD 한 장을 내밀었다. 1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앨범에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회개’ ‘임하소서’, 찬송가 3곡 등 12곡을 소개했다. 권씨가 ‘복음가수’라고 소개한 이유였다.

◇권태수는 누구인가=1974년 서울 종로 쉘브르음악감상실과 명동 쉘브르라이브카페 가수. 1976년 ‘님으로’ 첫 음반 출시, 1977년 ‘노래하는 곳에’ 신인상 수상(눈으로 말해요), ‘노래하는 곳에’(TBC), ‘토요일 토요일 밤에’(MBC), ‘신인탄생’(KBS) 등 진행. 1983년 충신교회서 세례, 복음성가 ‘할레할렐루야’ ‘내 모습 이대로’ 등 작사·작곡, 서울나들목교회 찬양 사역.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