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일드’를 보다가

입력 2010-07-08 18:29


즐겨보던 일드, ‘솔직하지 못해서’가 끝났다. ‘본방 사수’에, 이튿날이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막서비스를 찾아 복습까지 하며 보았다. 시작은 일본어 공부였지만 우에노주리, 에이타 등 나도 알 만한 청춘스타들이 나오는데다,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이 주연 급으로 나온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영웅이라는 성도 있냐고 물었다가 딸아이한테 장수만세에 나온 할머니 취급을 당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괄목할 발전이었다.

게다가 트위터 이야기라고 했다. 박근혜도 차범근도 한다 하고, 트위터를 둘러싸고 정치도 문화도 시끄럽기에, 나도 언제쯤 트위터러가 되어야 하나 하는 걱정 반 호기심 반이던 차였다. 인터넷도 휴대전화 문자도 기껏 익숙해지나 싶었는데, 더 빠르고 경쾌한 트위터의 등장에 당혹감도 컸다.

스토리는 뻔하다. 도쿄의 시부야를 배경으로 트위터를 통해 만난 다섯 청춘이 세상과 부딪치며 사랑과 우정을 앓는다. 아프지 않으면 그게 어디 청춘일까만,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솔직하지 못해서’ 어긋나고 상처받으면서 그렇게 여물어가는 이야기다.

트위터의 힘은 얼핏 대단해 보인다. 위기에 처한 친구의 SOS에는 특공대가 따로 없다. 특히 여주인공 하루가 마약 거래 현장에서 급하게 보낸 메시지, ‘도와…’의 경우처럼 쓰다 말아도 통한다. 상대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면 140자도 길다. 언어의 경제학이다.

그러나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의 가치가 짧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 속에 담긴 긴 이야기에 있듯이, 대부분 ‘솔직하지 못한’ 트위터의 짧은 글 속에서 진짜 속마음을 주고받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하듯 일방통행의 모놀로그가 아니라, 사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주인공 하루는 말한다. 문자로 전해주곤 하던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가끔은 직접 해 주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또 속마음과는 달리 어긋나기만 하던 남녀 주인공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트위터가 아니라 장문의 편지였다. 누군가의 희생도 있었고, 진정한 소통에 이르기까지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혹독했다.

곡절 끝에 조금쯤은 어른이 된 그들은 또 말한다. 저마다의 짐을 지고 가야 하지만, 혼자가 아니니 힘을 내자고. 그들에게 정작 위로가 된 것은 트위터 위에서 반짝이는 몇 마디 말이 아니다. 그 말 뒤에 숨은, 너무 진부해서 부정하고 싶고, 사족 같지만 생략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시간이었다. 아침이면 찢어버려야 할 치기어린 연애편지에 수많은 불면의 밤을 바칠 수밖에 없는 것이 청춘이듯이 말이다.

쉰 세대 분투기, 나의 일드 보기는 엉뚱하게 끝이 났다. 트위터는 접기로 했다. 대신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그 사소함에 대하여 느릿느릿, 그리고 시시콜콜 ‘즐거운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언어의 경제학은 가능할지 몰라도 사랑의 경제학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명이 첨단을 달린다 해도.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