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영포 목우회
입력 2010-07-08 18:09
경상북도 포항은 영일만을 끼고 있다. 포항시가 1949년 영일군에서 분리되어 나온 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일군은 사라지고 포항시만 남았다. 영일만은 불변이다. 영일과 포항은 우리 국토를 호랑이로 그리면 꼬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손바닥 조각으로 유명한 호미곶도 한자어 ‘虎尾’에서 나왔다.
지역 역사는 해, 바다와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호미곶이다. 울산 간절곳은 해마다 1월 1일 하루만 호미곶보다 먼저 해가 뜬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도 포항 앞바다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이 한적한 지역이 전국에 알려진 계기는 포항제철 건립이다. 1968년 바닷가 갈대밭을 헤치고 세워진 제철회사는 산업의 쌀을 생산하며 한국경제의 원동력이 됐다. 광양에 제2제철소를 세우면서 회사 이름에서 ‘포항’을 지우고 ‘포스코’로 개명했다.
가수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도 크게 기여했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수평선까지 달려나가 돛을 높이 올리자.” 노래 내용은 담백하다. 제목에 영일만이 나올 뿐 지역색에서 자유롭다. ‘영일만’ 자리에 ‘울산만’이나 ‘순천만’을 넣어도 무방하다.
이 지역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새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영일 포항 출신 5급 이상의 중앙부처 공무원 모임인 영포목우회 출신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다. 소속 회원들은 영포목우회는 수백 개에 이르는 지역 모임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영포뿐이겠는가. 군 단위로 모임을 만드는 게 우리 사회다. 영일만 친구가 있고, 목포의 눈물이 있으며, 소양강 처녀도 있다. 동향끼리 만나 우의를 다지는 거야 어쩌겠나. 향수를 달래고 고향이야기나 나누면 하등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떤 모임이든 연륜이 쌓일수록 집단사고가 지배하고 단체의 힘이 작동한다.
공무원들은 인사에 민감한 신분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를 즐긴다. 이들 은 모임 이름에 ‘牧(목)’자를 즐겨 쓴다. 예전에 관리를 ‘목민관’으로 부르는 데서 따왔다. 이런 낡은 용어에서 낡은 생각이 나온다.
성경 속 착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다. 공무원 필독서인 다산의 ‘목민심서’에도 높은 나으리들이 출신지역별로 모여 세력화하라는 대목은 없다. 목우회의 새 이름으로 ‘복우회(僕友會)’를 권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