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공간 너머] 심의(心醫)와 살의(殺醫)
입력 2010-07-08 18:13
왕위를 얻고 지키기 위해 조카와 동생들까지 죽였던 조선 세조는 남달리 병치레가 잦았다. 그 스스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 데 따른 업보라고 생각했던지 ‘억불숭유(抑佛崇儒)’의 건국이념을 묵살하고 궐내에 절을 짓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도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서(醫書)를 탐독했다. 나중에는 약 짓는 일도 전의(典醫)에게 맡겨두지 않고 반드시 먼저 토론한 뒤 스스로 처방을 내릴 정도로 의학에 일가견을 쌓았다.
재위 9년째인 1463년, 그는 친히 의약론을 지어 인쇄, 반포케 했다. 이 책에서 그는 먼저 “어떤 병에 무슨 약이 좋다고 하여 아무 때나 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처방 못지않게 약을 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미 상식이 돼 있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탁견(卓見)이었다.
그는 의사를 여덟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심의(心醫)니 환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의사다. 환자 마음이 편안하면 저절로 기운이 편안해지며 의사 말을 잘 따르게 돼 치료 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식의(食醫)니 환자 상태에 따라 입에 맞는 음식을 주어 기운을 차리게 해주며 음식을 약으로 쓰기도 하는 의사다. 셋째는 약의(藥醫)니 의서에 따라 약방문을 쓸 줄만 알 뿐 약 쓰는 타이밍을 모르는 의사다. 이런 의사는 이미 약을 쓸 시점을 넘겼음에도 계속 약만 먹으라고 한다.
환자 상태가 위급해지면 망연자실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의사를 혼의(昏醫), 환자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아무 약이나 마구 쓰며 여기 저기 닥치는 대로 침을 놓는 의사는 광의(狂醫)라고 했다. 이미 고칠 수 없게 된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함부로 나서거나(망의·妄醫) 의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 행세를 하는 자(사의·詐醫)도 제대로 된 의사 축에는 끼지 못했다. 여덟째는 살의(殺醫)니 총명해 의술에 대해 아는 바는 많으나 세상일에 경험이 없어 인도(人道)와 천도(天道)를 알지 못하며 병자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없는 자다.
세조는 특히 살의에 대해 길게 언급하며 “이런 의사는 남을 이기려는 마음만 가득하여 남이 동쪽이라 하면 서쪽이라 우기고, 먼저 말을 내뱉은 다음에 그를 합리화하는 논거를 찾으며, 자기가 틀린 걸 알고도 억지를 부린다. 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자신만 옳다고 여겨 남을 능멸하고 거만하게 구는 자다. 최하(最下)의 쓸모없는 사람이니 마땅히 자기 한 몸을 죽일지언정 다른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통렬히 꾸짖었다.
그런데 세조는 최상급의 심의라 해도 약의 처방과 시약(施藥)의 타이밍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리라고 했다. 그가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무심지의(無心之醫)’였다. “본래 생(生)이란 없으니 그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생이 없으면 병도 없고, 병이 없으면 의사도 없고, 의사가 없으면 일도 없다.” 그러나 ‘무심지의’에 대한 얘기는 그가 의학보다 종교에 더 의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줄 뿐 속세에서는 심의는커녕 약의도 찾기 어려웠다.
조선시대 상소문들은 흔히 임금을 의사에 비유하곤 했다. 임금이 백성의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무심하다고 비판하는 글도 있었고, 자기가 나라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방문을 만들었으니 채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글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든 그들이 말하는 ‘나라의 병을 고치는 의술’의 첫걸음은 백성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먼저 환자 마음을 열고 그 뒤에 약을 쓰는 것”은 예로부터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이었다.
나라의 병을 고치는 데에도 정확한 처방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환자가 수긍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지 않을 때에는 먼저 환자 상태를 바꾼 뒤에 써야 한다. 세조의 기준에 따르면, 심의나 식의 정도가 돼야 명의(名醫)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10년을 앓아온 나라의 질병’을 고치는 명의가 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반환점에 다다랐다. 환자에게 옳은 처방을 내리기는 한 것인지, 환자 심신이 쇠약한데도 거듭 독한 약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도가 없다고 환자가 불평하는데도 못들은 척 약을 더 먹으면 곧 나을 거라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야 할 때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