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탐험가 남영호씨 ‘순례기’… 2510㎞ 영혼의 강 사람이 흐르고 있었다

입력 2010-07-08 18:22


남영호(33)씨는 카메라를 든 탐험가다. 탐험하러 가서 기념할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날것을 그대로 사진에 담기 위해 탐험을 떠난다. 호칭도 사진가를 앞세운 ‘사진가 겸 탐험가’를 고집한다. 한국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루트가 곧 그의 스튜디오다.

2006년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 지난해 타클라마칸 도보 종단에 이어 이번에는 ‘영혼의 강’ 갠지스 2510㎞였다. 4월 6일 히말라야 산악빙하 아래 인도 강고트리 마을에서 출발해 지난달 21일 인도양과 마주한 방글라데시 벵골만까지 후배 정찬호(30)씨와 함께 트레킹과 래프팅으로 강을 탐사했다. 석 달 만에 서울로 돌아와 갠지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그와 지난 6일 만났다.

그는 “갠지스강은 콘트라스트가 너무 세다”고 했다. 콘트라스트(Contrast)는 사진에서 가장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차이, 흑백의 대비를 가리킨다. 지구상 어느 곳이나 밝고 어두운 양면이 있지만 특히 갠지스는 그 중간을 경험하기 힘들었다. 풍경과 사람의 이미지가 극단을 오간다는 뜻이다.

물소가 한가롭게 거니는 강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수량이 줄어 황색 모래바람 이는 불모지를 만났다. 강물에 불어터진 시신이 푸르뎅뎅 떠 있어도 아랑곳 않고 빨래하던 아낙네 옆을 지나며 죽음과 삶 사이를 걷기도 했다. 밟아보지 않은 땅을 탐험하러 왔는데 어느새 ‘순례(巡禮)’를 하고 있었다.

탐험가 남영호의 롤모델은 엄홍길이나 박영석이 아닌 신라 고승 혜초(704∼787)다. 인도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를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이자 글로벌 인재, 배낭여행의 선구자”라고 평가한다. 이번 탐험은 약 1300년 전 혜초가 걸었던 코스를 거꾸로 되짚었다. 무게 25㎏ 2인승 공기주입식 카약을 갠지스에 띄워 노를 저었고, 물살이 빠르면 카약을 접은 뒤 강가를 걸었다. 그는 “혜초를 끌어들인 매력이 뭔지, 강에 몸담고 사는 이들의 흔적을 겪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 입성을 앞두고 사이클론을 만났다. 그는 “갑자기 샤워기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강가에 카약을 댈 수가 없었다. 몇 십m 떨어진 강가에 배를 올려놓는 데만 3시간 넘게 걸렸다. 비바람과 두려움에 젖어 벌벌 떨고 있는데 한 농부가 다가와 자신의 움막으로 안내했다. 그러곤 건초더미를 내주며 불을 피워 몸을 녹이라고 했다. 오염에 찌들어 미역국 색깔인 강물 위에서 목마름에 시달릴 때 그에게 오이와 멜론을 건넨 이들도 천진한 눈빛의 갠지스 사람들이었다.

6월 11일 갠지스 하류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들어서자 밀림이 탐험대를 맞이했다. 18일 다왈파라에선 새벽 2시30분 ‘자쿠’라고 불리는 길이 50㎝ 칼과 권총, 흰 복면으로 무장한 4인조 강도에게 돈과 여권과 촬영 장비 일부를 빼앗겼다. 탐험 마지막 날인 21일 밤 9시쯤 도착한 벵골만에선 괴한 10여명이 보트를 몰고 쫓아와 무작정 인도양을 향해 노를 저어야 했다.

그 사이 GPS(위성항법장치) 좌표는 미션 완수를 가리켰지만 77일 극한상황을 이겨냈다는 기쁨은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티아섬 인근 이름 모를 섬에 간신히 카약을 댄 탐험대는 다음날에야 어민들의 도움으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향해 떠날 수 있었다.

남씨는 몸무게가 9㎏ 줄었다. 여정 막바지에는 너무나도 간절했던 김치찌개와 고기, 여러 가지 채소의 이름을 수첩에 꾹꾹 눌러 썼다. 피부는 커피색이다. 강물에 담그고 있던 시간이 더 많은 발은 물곰팡이가 피어 고름이 흘러내렸다.

그만큼 얻은 것도 많다. ‘세계 최초 무동력 갠지스강 완주’란 기록은 중요치 않았다. 온몸으로 부딪혀 담아낸 갠지스의 이미지 약 1만 컷을 얻었다. 그는 “이제 죽는구나 싶은 순간을 여러 차례 겪고 사람을, 생명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갠지스다운’ 이미지를 하나 꼽아보라 했더니 또 사람 얘기를 한다. “갈증을 토로하는 내게 수박을 건네주고, 내가 허겁지겁 수박 먹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천진하게 웃던 그곳 주민들 얼굴이죠. 그들의 미소 번진 입가에서 어린 시절 시골의 할머니께 귀여움 받던 느낌을 받았어요. 내게 갠지스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영혼의 강 갠지스, 결국 사람이 흐르는 강이다.

글=우성규 기자, 사진=남영호씨 제공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