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는 ‘러너’ 아닌 ‘조거’다… ‘마라톤은 철학이다’

입력 2010-07-08 17:33


마라톤은 철학이다/마이클 W.오스틴 등 13인/동쪽나라

마라톤과 철학은 닮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지루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매력 있다.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점도 닮았다.

그래서일까. 철학자는 마라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이클 W.오스틴 이스턴켄터키 대학교 철학과 조교수 등 철학자 13인이 마라톤의 철학적 의미를 분석했다. 이들 중에는 마라톤 마니아도 있고 이제 막 달리기에 입문한 초보자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전공한 철학의 분과에서 마라톤을 고찰한다.

자신의 경험담을 글 속에 풀어내 수필과 같은 느낌도 들고, 마라톤과 철학의 연관성을 짚어내는 과정에서는 철학서적의 난해함도 풍긴다.

레이먼드 J.반애러건 베댈 대학교 철학과 조교수가 쓴 ‘조거(Jogger·조깅하는 사람)를 찬미하며’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러너(Runner·달리는 사람)와 조거를 구분한다. 러너는 우승을 위해 달리고, 조거는 육체적 정신적 혜택을 위해 달린다는 것. 즉 러너의 목적은 세속적 이익에 가깝고 조거는 넓은 의미의 ‘건강’에 주목한다.

러너 안에서도 우승이나 상금을 노리는 ‘프라이즈(Prize) 러너’와 자기 성취감을 위해 달리는 ‘챌린지(Challenge) 러너’로 구분된다. ‘프라이즈 러너’는 목적에 경도돼 부정의한 방식으로 경쟁할 우려가 있고, ‘챌린지 러너’는 자신을 몰아치고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조거는 덕스런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달릴 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매일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며 반복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조거의 삶을 살 것인지, 러너의 삶을 택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케빈 킹혼 옥스퍼드 대학 철학 강사는 전문분야인 형이상학을 살려 마라톤을 통해 의식과 결심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는 마라톤을 하고 싶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새벽이면 기계처럼 달려나가는 숙련된 마라토너인 아내를 비교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달릴지 말지를 고민하는 자신은 매 순간 ‘결단’을 하는 것이다. 일어날 것인지, 옷을 갈아입고 나갈 것인지, 달릴 것인지…. 때문에 그에게 아침은 끊임없는 결단의 순간이다. 반면 아내는 마라톤에 대한 결단이 이미 끝난 상태다. 달리기에 대한 결심이 선 아내는 아침이 되면 ‘의도적인 행동’을 이어갈 뿐이다. 즉 달린다는 결정은 의도적인 행동이 있기 전인 과거 시점에 이미 이뤄진 것이다.

저자는 “성격이란 비슷한 행동들의 반복에서 기인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확고한 결정을 통해 마라톤을 습관화 할 것을 촉구한다.

마라톤은 고통을 수반하는 운동이다. 한계에 다다를 때 가파른 호흡과 근육의 경련은 마라토너에게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크리스 켈리 메릴랜드 대학 교수는 “마라톤은 여러 가지 육체적 고통에 익숙하게 만듦으로써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즐거움만이 좋다는 쾌락주의(헤도니즘)의 관점에서 마라톤은 정의롭지 않은 운동이다. 하지만 진짜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달리기 자체의 즐거움이 신체적 고통보다 클 수 있다. 또한 육체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일 수도 있다. 고통을 참아가면서 도착지에 골인할 때의 성취감이 이전의 고통을 상쇄할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마라톤은 고통일까 즐거움일까. 고통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저자는 마라톤은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외에도 현상학, 종교학의 관점에서 본 마라톤 분석론이 준비돼 있다. 철학이 생소한 독자들은 다소 난해한 설명에 읽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런 고비들은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처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그 고비를 넘어서면 마라톤의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음미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