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교수 ‘화학적 거세’ 긴급진단… “성폭력, 주사 한방에 없어진답니까”

입력 2010-07-08 18:03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인면수심 성범죄자들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찔렀다. 주춤하던 정치권이 움직였다. 1년10개월 동안 잠자던 ‘화학적 거세’ 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되살아났다. 다음날 본회의를 통과했다. 화학적 거세 대상자 연령은 ‘만 25세 이상’에서 ‘만 19세 이상’으로, 약물 치료 ‘본인 동의’ 조항은 ‘강제’ 조항으로 강화됐다.

대다수 국민은 박수를 쳤다. 특히 어린 딸아이를 둔 부모들은. 일각에선 그것도 부족하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물리적(외과적) 거세도 해야 한다, ‘인권, 인권’ 하지만 ‘짐승’에겐 인권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찬성하리라 생각했다. 조두순 피해자 ‘나영이’ 주치의였기 때문이다. 나영이를 치료하면서 “펑펑 울었다”던 그녀. 2004년 국내 최초 성폭력 피해아동 치료전담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 초대 운영위원장. “너무 바빠 30분밖에 짬을 낼 수 없다”던 그녀를 진료실 앞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 들은 얘기는, 예상과 달랐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신의진(46) 교수와 만난 것은 지난 5일이다.

왜 임상시험 안 하나

지난 5년여간 1000여명의 성폭력 피해아동을 상담한 그녀다. 모두가 바라던, 짐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는데.

“이런 식은 아니에요.”

첫 답이 너무 예상 밖이다.

“외국 연구 자료를 살펴봤는데 전체 성폭력범 중 7∼12% 정도에게만 화학적 거세 요법이 효과가 있다고 나오더군요. 저는 오히려 인지행동치료가 약물 자체보다 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달에 한번 주사(약물치료)를 맞으려면 정신과 의사를 주기적으로 만나 성욕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있는지 모니터를 받게 되는데, 이런 인지행동치료가 효과를 높여줄 겁니다.”

약물치료보다 인지행동치료라고? 하지만 인지행동치료는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 “화학적 거세에 반대한다는 의미냐”고 재차 물었다.

“원칙적으로는 찬성이에요. 제 말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국회는 ‘공포 1년 후 시행’이라는 부칙을 달았다. 보통 공포 6개월 후면 시행되는 다른 법률보다 여유가 있는 편인데….

“1년 뒤부터 전면 시행한다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화학적 거세의 안전성(인권 침해 문제), 효율성에 대한 연구가 있었습니까?”

현재 미국 8개주와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독일 등에서 화학적·물리적 거세 등 다양한 형태의 거세가 허용돼 있다. 우리보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시행하고 있는데 안전성 우려라니. “과도한 걱정 같다”고 하자 “시행하는 나라 많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들 사용하지 않는 것이죠. 도입한 나라들도 이런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해요”라고 되받는다.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이 대목에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훈 교수의 설명이 필요한 듯싶다.

“유럽 국가들은 당사자가 ‘성욕 통제가 안돼 괴롭다. 거세하고 싶다’고 요구할 경우 의사가 외과적 거세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즉 의사에게 시술 책임을 묻지 않도록 ‘거세법’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가 논하는 ‘형벌로서의 거세’와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신 교수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한다. 그래도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적어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덴마크는 ‘형벌로서의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모르겠어요. 그들이 어떻게 안전성 시험을 했는지는. 제가 열심히 찾아봤는데 인권 문제 때문인지 공개된 자료가 부족합니다. 학술지에 보고된 연구도 제대로 없어요.

개별적인 사례 보고만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히 검증받은 수준의 연구가 아닙니다. 설령 그런 연구가 있다 해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시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인종이 다르면 약물 용량이나 부작용의 양상 등이 달라집니다. 정신과 약도 한국인에겐 서양인보다 적은 양을 처방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자발찌 도입 때처럼 주먹구구식

의사로서, 교수로서 할 수 있는 말인 듯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에 사용되는 약은 이미 전립선암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성욕 감퇴용으로도 처방된다. 신 교수의 주장이 깐깐한 학자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화학적 거세를 하려면 약을 고용량으로 써야 합니다. 치료용으로 투여하는 것과 달라요, 여성호르몬제를 투여할 건지,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사용할 건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약을, 어느 정도 썼을 때 어느 정도 성욕이 감퇴되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1년 뒤 법을 시행하려면 지금 한창 임상시험 중이어야 합니다.”

의학적 접근이다. 좋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하는 건 아이들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처벌’을 하자는 얘기다. 더 이상 그 꼴은 볼 수 없으니까. 얼마간의 부작용은 감수하더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폭력범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닙니다. 소아성기호증 환자도 있고 단순 폭력범도 있고 변태성욕자도 있습니다. 다양한 성범죄자들 중 성욕 억제 시술을 했을 때 효과가 나타나는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 또 그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분량을 투여했을 때 어느 정도 성욕이 줄어드는지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대로 시행하면 행동이 개선된다 해도 약 효과인지 인지행동치료 덕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뒤죽박죽이 됩니다. 약 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약을 줄 수도 있고, 약을 많이 줘야 하는 부류에게 적게 줄 수도 있겠죠. 치밀한 준비 없이 무턱대고 했다가 화학적 거세 받은 사람이 재범하면 ‘화학적 거세 효과 없네?’ 이럴 거 아닙니까.”

멈춤 없이 나오던 말이 잠시 쉬었다. 길게 한숨을 뱉더니 “전자발찌 도입할 때와 진행되는 양상이 똑같다”고 했다.

“전자발찌 효과를 정확히 알려면 비슷한 성향의 전과자들을 전자발찌를 찬 그룹과 차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시험해야 합니다. 전자발찌가 성범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어떤 부류의 성폭행범에게 얼마 동안 부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등을 밝혀야 합니다. 그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주먹구구식으로 전자발찌를 채우고 있습니다.”

남자 정신과 의사부터 길러야

격정적 분위기라서 화학적 거세 이야기를 잠시 접었다. ‘인지행동치료’에 대해 다시 물었다. 신 교수는 분명 “인지행동치료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는 지금도 하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치료감호법을 개정해 성범죄자도 다른 정신질환자처럼 치료감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 성범죄자를 위한 인성치료재활센터가 설립됐다. 이곳에서 약물·인지행동치료가 시행 중이다.<본보 3월19일자 13면 보도>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 각각 필요한 대상을 골라낸 뒤 치료를 시작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치료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채 화학적 거세 주사만 놓아봐야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게, 주사 놓을 수 있는 ‘기능인’이 그냥 주기별로 (성폭행범에게) 주사약을 주입하는 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에요. 그렇게 하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주사(약물)와 상담(인지행동치료)이 함께 가야 하는데 주사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인지행동치료는 성인용의 효용성이 아직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답답해하는 신 교수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성범죄자들을 가둬두려고 치료하는 게 아니잖아요. 풀어주려고 치료하는 겁니다. 사회 속에서 치료받게 해야 합니다. 자기 형기는 각 교도소에서 채우고 석방 때쯤 정신과 의사들이 각 교도소로 가서 치료를 시작하고 출소 후에는 지역별 거점 센터로 정기적으로 찾아오게 해 상담과 치료를 해야 합니다.”

치료감호소 역할이 인지행동치료와 화학적 거세를 담당할 남자 정신과 의사를 양성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얘기다. “화학적 거세를 하려면 인지행동치료를 할 수 있도록 훈련 받은 남자 정신과 의사들이 많아야 합니다. 지금 턱없이 부족해요. 그러면서 어떻게 이 제도를 하겠다는 건지…. 이런 게 정리 안 된 상태에서 화학적 거세를 무턱대고 시작하는 건 무리예요.”

법무부보다 복지부가 나서라

이번 법안은 화학적 거세를 강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한상훈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가석방 조건으로 화학적 거세를 제안하는 정도고 덴마크는 인지행동치료 효과가 없을 때 본인 동의 아래 화학적 거세를 한다”며 “우리나라처럼 화학적 거세를 강제하는 국가는 (법안을 직접 살펴보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폴란드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 초안은 치료에 중점을 둬 본인 동의 조항이 들어 있었다.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법안이 수정되면서 처벌 형태로 바뀌었고, 이때 동의 조항이 빠졌다. 신 교수의 우려는 이런 맥락이다. 신중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무부가 주도할 텐데 걱정입니다. 법무부 밑에 화학적 거세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의사가 현재 있습니까? 돈은 법무부가 따오되 준비는 보건복지부가 맡아야 합니다. 화학적 거세는 복지부와 대학병원 몇 개가 달라붙어야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유수한 비뇨기과, 정신과 의사, 약학자들이 투입돼야 합니다.”

말을 맺은 신 교수가 “아시아에서 처음인 게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내년부터 전면 임상시험을 해야 합니다. 5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동안 법 적용 대상자들은 가둬두면 되잖아요. 급할 필요 없습니다. 외국 전문가로 자문단을 꾸려서 한국적, 아시아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아인에게 적합한 약을 우리가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얼렁뚱땅해서는 안 됩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