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세상에 못 나올 뻔 했다… ‘픽사이야기’
입력 2010-07-08 17:49
픽사이야기/데이비드 A. 프라이스/흐름출판
디즈니의 아성을 허문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AR)는 드라마 같은 길을 걸어왔다. 픽사의 출발점은 1974년 애드 캣멀이 뉴욕 공과대학에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장으로 부임하면서다. 디즈니 만화를 동경했던 그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화를 만들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몽상에 가까운 꿈을 꾸고 있었다. 디즈니 출신의 존 래스터도 같은 비전을 갖고 합류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도전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 꿈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86년 스티브 잡스를 만나면서다. 당시 잡스는 상처 투성이였다.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루카스필름으로부터 픽사를 500만 달러에 사들여 재기를 노렸다. 절박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애플의 성공은 운 덕분이었다”는 호사가들의 비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잡스는 픽사가 가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캣멀과 래스터가 꿈꾼 비전과 잡스가 보는 미래는 확연히 달랐다. 잡스는 애플에서처럼 픽사를 그래픽 하드웨어에 특화된 기업으로 키우려고 했다. 당시 픽사는 컴퓨터를 판 돈으로 습작에 가까운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당연히 애니메이션으로는 수익이 안 났다. 매년 적자가 쌓여서 잡스가 개인적으로 저당을 잡혀 돈을 마련해야 했다. 잡스는 몇 번이나 애니메이션 부서를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캣멀과 래스터는 꿈을 놓지 않았다. 이들은 86년 1분30초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로 꿈에 한 발 다가서게 된다. ‘룩소 주니어’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큰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래스터는 처음에 ‘룩소 주니어’에 이야기 구성을 넣을 생각이 없었다. 작은 스탠드 등을 의인화 한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벨기에 출신 애니메이터 라울 세레베가 “아무리 짧은 영화라도 시작이 있고, 전개가 있고 또 결말이 있어야 한다. 10초짜리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픽사의 작품이 탁월한 기술력 말고도 훌륭한 스토리 라인을 갖게 된 것은 이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룩소 주니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큰 스탠드와 작은 스탠드가 등장한다. 작은 스탠드는 공 위에 올라타 통통 뛴다. 하지만 공의 바람이 빠지자 풀이 죽어 무대 밖으로 나간다. 큰 스탠드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이 작은 스탠드는 더 큰 공을 가지고 나타나 신나게 논다.
픽사는 이 작품에서 랜더링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홍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나고 받은 질문은 “그런데 큰 스탠드는 아빠야? 엄마야?”였다. ‘룩소 주니어’는 금세 관심작으로 회자됐다. 지금도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시작될 때 룩소가 나와 알파벳 I자를 꾹꾹 짓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윽고 래스터는 ‘틴 토이’라는 또 다른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88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그러자 잡스는 드디어 애니메이션 부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5000만달러를 쏟아부은 잡스의 인내심은 한계까지 왔다. 픽사가 디즈니와 손잡고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잡스는 계속 회사를 매각하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매각 의사를 타진해 왔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의 제작이 구체화 될수록 잡스의 본능이 꿈틀댔다. 뭔가 엄청난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 잡스는 매각을 철회하고 오히려 ‘토이 스토리’ 개봉에 맞춰 주식공개를 결심한다.
계속 적자를 보던 회사가 주식을 공개하겠다는 건 정신 나간 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잡스의 예감은 적중했다. 95년 11월 22일 ‘토이 스토리’가 공개되자 난리가 났다. 엄청난 흥행 수익에 평단의 극찬까지 받은 ‘토이 스토리’는 미국에서만 1억9200만달러, 해외에서 3억5700만달러를 벌어 그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됐다. 그리고 11월 29일 기업공개일이 되자 주식은 주당 39달러에 팔렸고 픽사는 1억3970만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 이후 픽사는 승승장구했다. ‘토이 스토리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카’, ‘월E’, ‘업’ 등 만드는 작품마다 홈런을 치며 애니메이션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다.
2006년 1월24일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했다는 뉴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표면상 인수지만 적극적으로 구애한 쪽은 디즈니였다. ‘토이 스토리’ 때만 해도 픽사는 일개 하청업체의 위치였다. 애니메이션의 권리도 모두 디즈니가 가졌고 속편을 제작할 권리도 디즈니에게 있었다. 큰 수익이 안 나면 돌아오는 이익도 없었다. 돈보다 꿈을 따른 픽사는 이런 조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수작을 내놨다.
픽사가 눈부신 발전을 하는 동안 디즈니는 멈췄다. 대중은 디즈니라는 브랜드보다 픽사를 더 신뢰했다. 디즈니가 자체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부진을 거듭했다. 디즈니에게 픽사는 구세주였다. 단돈 500만달러짜리 회사의 가치는 74억달러가 됐다. 이맘때쯤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한 잡스는 개인으로는 디즈니 최대주주가 됐고 이사회 멤버가 됐다. 캣멀은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조직을 합친 새 조직의 사장이 됐다. “디즈니에 남아 감독이 되느니 픽사에서 새 역사를 쓰겠다”던 디즈니 출신의 래스터는 두 조직을 관장하는 최고창작책임자가 됐다.
픽사의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개봉한 ‘토이 스토리3’는 개봉 10일 만에 2억2650만달러의 흥행 기록을 수립하며 올해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