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걸그룹 쿼터제
입력 2010-07-08 18:00
평소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지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터 걸그룹이라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예쁘다는 건 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하나같이 예쁘고 어리고 귀여워서 세상에 뭘 먹고 저렇게 어여쁜 아이들이 있나 싶어 나도 모르게 황홀하게 쳐다본다.
얼굴도 조그마하고, 키도 크고 늘씬한 것이 한국인의 유전자가 서구화돼 그런 거라고 한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드나드는 중·고등학교 여자아이들을 보니 다들 마르긴 했는데 키 큰 애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허리는 모조리 한 줌도 안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교복 광고도 노골적으로 S라인을 살린다 어쩐다 한다. 마트에는 도대체 저기 누가 들어갈 수 있나 싶게 조그만 교복들이 걸려 있다. 요즘 애들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 와중에 라인까지 신경 써야 되는 모양이다.
도시락 까먹고 매점에서 빵 사 먹다가 교복 치마가 터져서 허리를 옷핀으로 꽂아 놓았다든가, 앉은 자리에서 튀김에 떡볶이에 라면 사리 추가해 먹고 거기에 밥까지 볶아 먹었다는 여고생들은 이제 멸종된 걸까. 그래서 저토록 하늘하늘한 아이들만 남은 걸까. 고3 여학생 하나가 소곤소곤 “친구들 먹고 토하고 많이들 그래요” 하는 걸 보니 잘 먹는 여학생들이 멸종되진 않았어도 떳떳하지 않은 건 확실한 모양이다.
옛날에는 대학 가기 전까지는 당당하게 마음껏 살찔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고 부모님이고 대학 가면 살 다 빠져 하고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줬는데. 귀로 그런 말 아무리 들어도 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한 또래들이 브라운관을 잔뜩 채우는 걸 보면서 크는 요즘 애들은 그거 다 좋은 맘으로 하는 거짓말이라는 걸 대뜸 알아챌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언젠가 모 걸그룹 멤버들이 하루에 900㎉만 먹고 산다고 했다가 죄다 놀라니까 1200㎉라고 정정하는 걸 봤다. 900㎉ 따위, 사과 서너 개 먹으면 땡이다. 성장기 여성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은 2300㎉쯤 되는데 1200㎉라니, 물이랑 풀만 먹고 사는 수밖에 없다. 밥 같은 거 반 공기 넘으면 안 되고 두부나 토마토 몇 점 삼키면 그까짓 1200㎉ 금방이다. 다이어트 좀 해 본 여자라면 누구나 1200㎉가 얼마나 가차 없는지 다 안다. 한국 여자 치고 다이어트 생각 안 해 본 여자는 없으니 아마 다들 알 것이다.
나 역시 너무 알아서 씁쓸해진다. 뭘 먹어서 저토록 어여쁜가 싶은 소녀들은 뭘 먹어서 어여쁜 게 아니라 안 먹어서 더 어여쁜 거였나 보다. 애 가진 친구가 “임산부 카페에 회원들이 올린 사진을 봐도 임신한 게 맞긴 맞나 싶을 만큼 날씬한 팔다리에 배만 볼록 나왔지 전처럼 살 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코웃음 친다. 어째 점점 사는 게 가차 없어진다. 걸그룹 멤버 중에 체질량지수(BMI)가 정상을 초과하는 애들을 꼭 넣는 식으로 쿼터제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하긴 그런 거 해 봤자 악플 때문에 그런 여자애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 애들까지 먹고 토하는구나, 그 조그만 교복이 측은해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