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 & out] 노숙인 잡지 창간 산파役 최준영 교수

입력 2010-07-08 20:01


“빅이슈를 서서 파는 까닭 아세요?”

지난 5일 ‘빅이슈 코리아’란 잡지가 창간됐다. 광화문 명동 신촌 등 서울 15곳에서 노숙인들이 판매하고 있다. 판매자는 처음 10권을 공짜로 받아 거리에서 “빅이슈”를 외치며 권당 3000원에 판다. 이렇게 번 돈으로 11권째부터 권당 1400원에 사다가 팔면 1권에 1600원씩 수입이 생긴다.

노숙인에게 빈손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감을 주자며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문화지 ‘빅이슈(The Big Issue)’는 호주 일본 등 28개국으로 확산됐다. 이 잡지가 한국에 상륙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니 2005년 9월과 만난다. 대한성공회가 노숙인들을 위한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때다.

성프란시스대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작은 공간에서 노숙인들에게 ‘소크라테스 교육철학’을 얘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던 최준영(44) 현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5년째 노숙인들과 인문학을 논하고 있고, 최근 3년은 빅이슈에 미쳐 지냈다. 지난 6일 그를 만났다.

-빅이슈를 구상한 건 언제부터죠?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1기가 2006년 4월에 끝났어요. 입학한 선생님들(그는 노숙인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스물 한 분 중에 열세 분이 수료했죠. 5월부터 2기가 시작됐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인문학이 그분들에게 삶의 목표를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생활 그 자체를 바꾸긴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언제 선생님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한 적이 있던가? 그러면서 궁리하다 TV에서 우연히 일본 빅이슈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일 텐데요.

“주위에 자문을 구했어요. 미디어를 안다는 사람들부터 종이매체, 특히 잡지의 위기다, 더욱이 노숙인 관련 사업에 누가 돈을 대겠냐고 하더군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를 제외하곤 선생님들이 사회적 관심을 끈 적이 없잖아요. 2008년 1월 영국 런던 빅이슈 본사에 직접 가봤습니다. 운영시스템을 배우고 거리에서 빅이슈를 팔아보기도 했죠. 한국에서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영국 빅이슈는 어떻게 하고 있던가요?

“취재, 편집, 디자인, 마케팅 등 분야별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잡지를 만들고 경영을 해요. 급여는 일반 직장의 70%선인데 2년 정도 일하면 다른 기업에 매니저급으로 스카우트되곤 한대요. 의미 있는 일을 한 경력을 높이 사주는 거죠. 본사 근무자 중엔 빅이슈 팔던 노숙인 출신자도 여럿 있어요. 주간지로 60만부 이상 발행하는데 수입원이 세 가지예요. 잡지 판매, 소액기부, 광고 및 이벤트 사업. 오래 전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답니다.”

-어떤 노하우를 알려주던가요?

“판매관리 기법이 대단해요. 빅이슈 판매자를 ‘벤더’라고 부르는데, 런던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선배 벤더들이 후배 벤더들에게 판매 방법을 가르치면서 돕습니다. 벤더들은 절대 길바닥에 앉아서 팔면 안 돼요. 서서 ‘빅이슈’ 외치며 팔아야 하죠. 빅이슈를 사가는 런던 아줌마에게 ‘왜 샀냐’고 물었더니 ‘He is working, not begging’이래요. 저 사람은 구걸하는 게 아니라 일하고 있는 거다, 앉아 있었으면 지나쳤을 텐데 서서 일하고 있기에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눈 것이다, 하더군요. 또 벤더는 잡지 판 돈을 갖고 다니니까 다른 노숙인이나 깡패의 타깃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경찰이 벤더 위치를 파악해 순찰하며 보호해줍니다. 대중스타들이 공연할 때 티켓 판매를 빅이슈 측에 맡기는 경우도 많아요. 빅이슈에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죠.”

-일본 빅이슈에도 다녀오셨더군요.

“일본은 2005년 오사카에서 발행돼 나고야와 도쿄까지 확대됐어요. 적자였다가 2008년 권당 가격을 200엔에서 300엔으로 올린 뒤 더 잘 팔린대요. 제가 갔을 때 오사카의 한 남성 구매자에게 물어봤어요. 비싸졌는데 왜 사냐고. 200엔 할 때는 한 부 사봐야 얼마나 (판매자에게) 도움이 될까 했는데, 이젠 값이 올라서 도움이 될 것 같아 산대요. 수익금으로 본사 직원 20명 월급 다 줄 만큼 자리 잡았답니다.”

최 교수는 빅이슈 창간을 위한 펀딩에 고전하다 2008년 10월 한 일간지에 기고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다. ‘빈곤에 대한 우리 인식의 빈곤이 너무 아쉽다. 롤러코스터 경제에서 언제 누가 빈곤에 빠질지 아무도 모른다. 빈곤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후 대학생 몇몇이 돕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고, 그들과 빅이슈 창간 모임을 꾸려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지금 회원 1000명으로 불어난 이 카페가 빅이슈 코리아의 모태다. 이 회원들이 상당수 빅이슈 코리아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 교수는 아직 창간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왜죠?

“올 1월 노숙인 지원단체 ‘거리의 천사들’에 빅이슈 사업을 모두 넘겼어요. 제가 시도했던 펀딩이 다 실패했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편지도 쓰고, 국회의원들 찾아다니고 했는데 제 역량으론 안 되더군요. 거리의 천사들이 맡아줘서 다행이죠. 빅이슈가 탄생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래도 몇 년씩 공들인 일이라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창간 준비할 때 투자하겠다던 분이 있었어요. 만났더니 아주 쉽게 생각하는 거예요. 대충 잡지 하나 만들어서 노숙인들이 팔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에요. 안 그래도 잔뜩 움츠려 있는 분들인데 질 낮은 잡지 쥐어주고 팔라는 건 구걸하라는 얘기예요. 최고 품질의 잡지를 만들어야죠. 당당하게 팔 수 있도록. 그러기엔 제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았어요.”

최 교수는 지난 1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빅이슈 창간을 준비하며 5000만원가량 빚이 생겼는데 갚을 상황이 못 돼서라고 한다. 그의 교수 직함은 2007년 경희대가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운동을 시작하면서 마련해준 것이다. 수입은 실천인문학센터를 통해, 또는 개별적 요청에 따라 맡는 강의료가 전부다. 올해는 여성 장애인을 위한 인천 노틀담복지관을 비롯해 4곳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사료는 회당 적게는 3만원 많으면 20만원 정도.

그는 “작은 식당을 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나도 선생님들처럼 됐을 것”이라고 한다. 가난하게 자라 고교를 중퇴했고, 구두공장에 다니며 야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다녔지만 역시 중퇴하고 야학 교사를 했다. 신문기자로 잠시 일하다 2000년 신춘문예를 통해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한 뒤 노숙인들을 만나기 전까지 칼럼니스트로, 라디오 프로그램 문학코너 진행자로 활동했다.

-노숙인과의 인문학 공부는 어땠습니까?

“선생님들은 자부심 강하고, 생각이 많고, 세상 소식에 무척 밝은 사람들이에요. 자부심은 이런 거죠. ‘네가 나보다 더 고생했어?’ 하는. 늘 혼자 다니잖아요. 시간이 많으니 자연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런 생각이 대부분 고통스러워서 술을 마시는 겁니다. 서울역에선 발에 차이는 게 신문이에요. 할 일이 없어서 그걸 다 읽는 분들입니다. 겨울엔 돈이 약간 생기면 PC방에 가죠. 노숙도 정보가 빨라야 밥을 얻어먹어요. 그러니 강의 시간에 말문만 트이면 토론이 됩니다. ‘전태일 평전’에 대해 얘기할 때였는데 그 책이 시대를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당시 봉제공장 하던 사람 중엔 자기가 알기론 착한 공장장도 많았다, 그들까지 싸잡아 나쁜 놈 된 것 아니냐는 얘기였죠.”

-인문학이 어떤 영향을 주던가요?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란 책을 같이 읽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저자는 나치 수용소에서 삶의 목표가 있었기에 버텨냈다, 목표가 있는 사람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정리했죠. 그 수업에 60세쯤 되신 분이 있었는데 1년 뒤 찾아왔어요. 20t 탱크로리 기사가 됐더라고요. 너무 험한 일이라 기사를 구하지 못하던 차주(車主)에게 자기가 해보겠다고 자청했대요. 그러면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제가 운전면허가 없습니다’ 했다는 거예요. 차주가 면허 따게 도와줘서 월 300만원쯤 번답니다. 제가 물었죠. ‘그 연세에 힘들지 않으세요?’ 답변이 꼭 이랬어요. ‘교수님이 목표가 있으면 이겨낸다고 했잖아요. 난 우리 딸 결혼시켜야 돼.’”

-빅이슈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빅이슈는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나눔문화의 결정체예요. 그 잡지를 만들려면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이 표지모델로 나서고,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이 재능을 기부해야 합니다. 시민은 구매를 통해 나눔에 동참하는 거죠. 기부문화 확산의 첨병이 될 겁니다. 그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건 자존감을 갖는 거예요.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빅이슈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