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는 무슨… 혜택은 좀 봤을 걸”
입력 2010-07-08 17:45
‘영포 게이트’ 포항 … 민심은 지금
경북 포항은 경제적으로 포항제철이라는 거대 기업의 그늘 밑에 있다. 포항제철과 거기에 연관된 기업들이 포항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지방도시치고 꽤 부유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포항은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으로도 큰 그늘을 얻었다. 포항 출신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포항에서 6선을 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인 3선 이병석 의원까지 고려한다면 포항이 보유한 정치적 자산은 대단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2년 반이 지났다. 지난 6일 찾아간 대통령의 고향 포항에는 자부심과 기대감이 여전했지만, 한쪽에선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포항시청이 내건 ‘영일만 르네상스’ 구호가 포항의 기세를 보여준다면, 정치권에서 떠들썩한 ‘영포게이트’는 포항의 곤혹을 말해준다.
영일만 르네상스
“국비 따고 지원 받는데 아무래도 유리하다. 대통령 고향이니까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을까 기대하며 들어오는 기업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포항시청 공무원은 ‘대통령 효과’를 이렇게 전했다. 다른 공무원은 “지방 중소도시 시장이라면 중앙부처 국장이나 차관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런데 포항시장은 어딜 가도 괄시 안 받는다. 그게 울타리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포항시의 숙원사업 여러 건이 술술 풀려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취임 직후 남구에 국가산업단지 입주가 확정됐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에 포항이 추가 편입됐다. 또 서울∼포항 KTX(고속철도) 직결노선이 확정됐고, 포항∼삼척 동해중부선 철도가 착공됐다. 1992년 시작돼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던 영일만항은 지난해 부분 개장을 했다. 내년에 확장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 작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굵직한 사업만 꼽아 봐도 이렇다. 시 외곽 도로들은 택시기사들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생겨나는 중이다. 최광열 포항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 나온 동네라서 그런지 대형 국책사업들이 잘 진행되고 있다. 예산을 배정받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사업들인데 다들 진척이 굉장히 빠르다”고 말했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6·2 지방선거에서 74.7%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의 행보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지난 2일 발표된 취임사 제목은 ‘영일만 르네상스, 52만 시민이 함께 열어갑시다’였다.
‘영일만 르네상스’는 영일만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지대, 배후산업단지, 철도, 고속도로 등을 결합시켜 환동해권 국제물류 중심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영일만대교 건설 계획도 들어있다. 또 하나의 중점사업인 동빈내항 복원까지 고려하면 포항시의 개발계획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대통령만 믿고 무리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아닌가, 정권에 기대서 뭘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염려가 있다”면서 “시장이 앞장서서 대통령 고향이니까 이번 기회에 뭘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대통령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시 사업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혜택’은 있는지 모르지만, ‘특혜’라고 할만한 건 없다는 것이다.
포항 출신으로 경북 정무부지사를 지낸 이석수(77)씨는 “삼척∼포항 철도에서 포항 구간은 얼마 안 된다. 울산∼포항 고속도로에서도 포항 구간 얼마 안 된다. 그런데도 포항만 들어가면 다 ‘형님예산’이라고 공격한다”고 반론을 폈다.
주목할 것은 포항지역에 소외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김동완 포항시청 홍보팀장은 “울진∼포항 국도 4차선 공사는 20년 넘게 방치됐던 사업이다. 영일만항도 마찬가지고. 지난 두 정권에서 서해와 남해만 챙겼지 동해는 소외시켰던 거 아니냐. 이제라도 동해를 개발하는 게 국토균형발전 논리에 맞다”고 주장했다.
영포게이트
영일·포항 출신들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거 포진해 ‘대통령 친위대’ 역할을 하면서 민간인 사찰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게 최근 불거진 ‘영포게이트’의 핵심 내용이다. 정권 초기 ‘형님예산’ 논란에 이어 다시 터진 영포게이트는 대통령 고향에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또 한 번 건드렸다.
“시민들은 굉장히 불쾌해 한다. 포항 사람들이 나라에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희열과 자부심에 타격을 입었다”는 한 공무원의 말은 포항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
이번 정권 들어 포항 출신이 득세하고 있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영일·포항은 성골, 경북은 진골”이라는 말도 나왔다. 민주당 포항시 남구·울릉군 지역위원장인 허대만씨는 “포항이 경제적으로 특혜를 누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인사에서는 덕을 좀 본 것 같다”며 “최시중씨(방송통신위원장)나 이영호씨(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씨(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이 대통령 형님과 친분이 없고 포항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갔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영일·포항 출신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의 친목모임인 영포목우회(이하 영포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석수씨 의견은 다르다. “최시중씨 정도가 아니라면 장관 등 고위직에 포항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내가 아는 영포회 사람 가운데 정권 덕을 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영포회 전 회장 이원씨 예를 들었다.
“지난 5월에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임기가 끝났다. 다들 무난히 연임할 거라고 봤는데, 연임하지 못했다. 영포회가 정말 힘이 있었다면 그렇게 됐겠느냐?”
포항 사람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몰매를 맞고 있다는 얘기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영포회 논란이 지역 민심을 들쑤셔 놓았다. 이석수씨는 “민간인 사찰로 문제가 된 이인규씨나 이영호씨를 영포회원도 아닌데 영포회원으로 만들고, 그걸 포항 인사들의 권력형 게이트로 비약시키고 있다”며 “영포회는 회장도 못 뽑을 만큼 유명무실한 조직이고, 전국 어느 지자체나 다 공무원 모임이 있는데 영포회가 몰매를 맞고 있는 건 포항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했다.
허대만씨 역시 “영포회를 거론한 것은 야당의 실수”라며 “영포회가 권력의 배후라는 공격은 사실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역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당도 지역감정을 자꾸 조장해선 안 된다”며 “형님예산도 그렇고 영포회도 그렇고 사실이 아닌 걸 갖고 자꾸 사실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씨는 “영포게이트에서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정권이 고향 사람들을 동원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이라는 명백한 불법을 저질렀다. 그리고 거기에 근무하는 30명 중 17명이 포항 사람이라고 한다. 정권이 고향 사람들을 동원해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그는 또 민간인 사찰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영준 국무처장과 이인규 지원관이 포항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은 옹색하다고 비판했다.
“박영준씨는 이상득 의원 보좌관을 10년 이상 한 사람이다. 여기서는 지금도 다들 ‘박보(박영준 보좌관)’라고 부른다. 그 사람은 어떤 포항 사람보다 포항 인맥이 넓다. 또 이인규씨는 경북 영덕 출신이 맞지만 포항고를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포항 인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조용하고 평온하던 도시 포항은 지난 2년 반 동안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출렁거렸다. 이제 대통령 임기 반이 지났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대통령이 어릴 적 뻥튀기 팔고 아이스크림 팔았다는 죽도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창혁(48)씨는 “대통령 고향이라고 말만 많지 실제로 그게 우리들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대통령이 명예롭게 임기를 마무리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포항=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