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도우미는 못배운 중년아줌마들?… ‘스펙’ 화려한 베이비시터 쏟아진다

입력 2010-07-07 21:12


남편과 맞벌이하는 이모씨는 최근 자신의 갓난아이를 돌보려고 고용한 베이비시터(육아 도우미)들의 면면이 화려함에 놀랐다. 첫 번째 도우미 신모(43)씨는 미국 시카고대 디자인과를 졸업한 여성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살다 온 신씨가 아이에게 불러주는 영어 동요는 현지인의 노래를 듣는 듯했다. 신씨의 남편은 대기업을 퇴직하고 경기도 지역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 중이었다.

다른 도우미의 배경도 신씨 못지않았다. 신씨 다음에 아이를 맡은 임모(53)씨는 삼성전자에서 과장까지 지내고 퇴사한 여성이었고, 세 번째 도우미 김모(53)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수필가였다. 이씨는 “베이비시터 지원자 가운데 남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젊고 똑똑한 베이비시터가 쏟아진다=‘남의 애를 대신 봐주는 사람은 고졸 이하 중년 여성’이라는 통념과 달리 젊거나 경력이 화려한 육아 도우미가 늘고 있다. 대학 졸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유학파, 대기업 출신, 전직 유치원 교사 등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 여성들이 육아 도우미를 자처한다.

육아 도우미 알선 인터넷 사이트 ‘이모넷’을 보면 20, 30대 여성 지원자가 상당수다. 7일 서울 강남구는 전체 지원자 252명 가운데 21%인 54명이 20대였다. 강남권인 서초·송파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한 여성으로 외국 명문 학교를 다닌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밖에 유아교육이나 아동학 전공자, 미술 음악 등 예능계 출신, 전직 어린이집 교사나 학습지 방문교사 경력을 장점으로 앞세우며 육아 도우미를 자원했다. 간혹 10대와 남성 지원자도 있었다.

◇중년은 맞벌이, 청년층은 용돈벌이=고학력 중년 여성이 육아 도우미로 나서는 이유는 여느 맞벌이 여성과 같다. 남편 수입만으로 원하는 수준의 살림을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맞벌이 여성 이씨의 아이를 맡았던 세 여성도 자녀 학원비나 대학 등록금, 자녀 결혼 밑천을 대려고 일을 시작했다.

고학력 중년 도우미가 한 달에 버는 돈은 보통 130만∼150만원이다. 도우미의 학력과 경력,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비교적 적은 수입이다. 이들은 “중년 여성을 받아주는 일자리가 적고 있더라도 근무 조건이 열악하다”며 “주부 재취업이 어려운 실상을 고려하면 감지덕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계형인 중년과 달리 젊은 여성들에게 육아 도우미는 남다른 용돈벌이 수단이다.

강남 지역 가정에서 5개월간 일했던 임모(24·여)씨는 “급여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센 편이고 학교나 직장을 다니면서 저녁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급여는 시간당 5000원 이상이다. 사무보조나 식당일처럼 여러 사람을 상대하며 실랑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선생님 역할까지 하는 베이비시터=육아 도우미 수요는 경제 위기로 맞벌이가 활성화한 1990년대 후반 이후 크게 늘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노후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시댁이나 친정에서 아이를 맡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한국베이비시터협회 백혜숙 회장은 “과거 파출부 정도로 여겨진 베이비시터는 외환위기가 터진 97년 공식 도입됐다”며 “누가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많이 배우고 건강한 도우미를 찾는 가정이 늘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