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木)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Ⅰ

입력 2010-07-07 17:51


찬송 : ‘샘물과 같은 보혈은’ 258장(통 19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8절)


말씀 :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헬라어로 청결에 해당하는 ‘카타로스’는 아주 폭넓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때가 묻어 더러워지지 않은 깨끗한 옷을 설명할 때 사용했고, 흠이 없고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사물과 관련지어 사용하기도 했으며, 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포도주와 우유에 대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완전하고 아무 상처나 결핍이 없는 동물에 대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의식적인 정결함을 묘사했습니다. 즉 도덕성이 거의 또는 완전히 배제된 상태의 정결함을 묘사하는 단어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사장을 선정하는 규례에 있어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아론의 후손이어야 했습니다. 도덕적 성품, 영적인 통찰력, 선함, 경건과 거룩함 등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거만하고, 간음을 일삼으며, 이웃에 해악을 끼치는 자라 할지라도 그가 아론의 후손이었다면 그는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결은 완전하게 외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정결함에 대한 유대 사회의 통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시어 유대 사회의 전통적 개념과 완전히 분리시키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정결은 내적인 문제였습니다. 생각의 일이요, 마음의 일이요, 영혼의 자세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한 예수님의 진의는 “그의 생각들과 동기들에 아무런 이물질이 섞이지 아니한 사람, 그래서 그의 생각과 마음의 동기까지도 절대적으로 깨끗한 사람”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이러한 절대적인 순수함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외적으로는 절대적으로 관용적이며 심지어 자기희생적인 것으로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그 안에 자기 만족, 자기 사랑 또는 교만의 동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일에 있어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음흉한 동기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숨어 있는 동기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섯 번째 복이 요구하는 정결함으로 이르는 길은 오직 자신을 죽이고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솟아오르게 하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팔복의 말씀을 선언하신 그리스도만이 이 약속된 말씀의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더욱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는 복된 날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스스로는 결코 완전하고 순수한 정결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정결케 하실 줄 믿사오니, 그 보혈 안에 늘 거하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백동조 목사<목포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