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기부금과 추징금
입력 2010-07-07 17:51
경기도 용인에 사는 조천식(86)씨는 지난달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위해 써 달라며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탁했다. 이웃에 사는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가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감동받아 자신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앞서 5월에는 젊은 시절 조그만 사업체를 경영했던 김용철(89)씨가 국가안보에 써 달라며 100억원에 가까운 전 재산을 국방부에 내놓았다. 또 수의사 출신 김두림(85)씨는 노인요양병원을 지어 달라며 제주대에 4만여평 목장(300억원 상당)을 기부했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기부 바이러스에 감염됐음을 말해 준다.
천안함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윤청자씨가 최근 침략자들을 응징하는 데 써 달라며 1억원의 성금을 내놓았고, 그것에 감동받은 익명의 중소기업 직원들이 윤씨에게 826만여원을 전달한 것도 우리들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사재 331억여원을 출연해 우리사회 기부문화 확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기부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미국의 억만장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기부 황제’로 불리는 두 사람이 요즘에는 손을 잡고 미국 400대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부자모임까지 만들어 기부운동을 벌이는 게 참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기부도 기부 나름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75) 여사가 모교인 경북여고에 거액을 내 놓기로 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과 관련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노 전대통령은 1997년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추징금 2628억여원 중 2344억여원만 냈으며, 284억여원은 미납 상태다.
김 여사는 학교 역사관을 짓기 위한 총동창회 모금운동에 동참, 5000만원을 기탁하기로 약정했다 한다. 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 노년에 모교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남편이 국가에 수백억원의 법적 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체면 세우는 일에 큰 돈을 쓰기로 한 것은 겉과 속이 다르게 비쳐진다. 혹 숨겨놓은 재산이라도 있다면 추징금을 다 내고 난 다음 기부해도 늦지 않을텐데….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