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윤재석] 공적개발원조와 國格

입력 2010-07-07 18:03


“참전 개도국에 대한 보은 원조로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게 우리의 책무”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올해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에 가입한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정부수립 2년 만에 터진 전쟁으로 거의 적화된 산하를 21개 참전국(5개 인도지원국 포함)의 도움으로 겨우 수복한 약소국,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빈국이 ‘선진국 중 선진국’이라 할 DAC 멤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진정 국가 위상에 걸맞은 책무 즉, 국격에 상응하는 의무를 다하고 있느냐는 데엔 반론의 여지가 없지 않다. 2008년 처음으로 1조원 돌파와 함께 국민총소득(GNI) 대비 0.1%대에 올라선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올해도 0.1%대에 머물고 있으며, 2015년에야 겨우 0.25%(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유엔이 권장하는 GNI 대비 0.7%는커녕 DAC회원국 평균치인 0.3%에도 미달되는 수치다.

줄 곳은 많고 예산은 한정돼 있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무얼까. 선택과 집중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특히 6·25 참전국 중 아직도 개발도상국으로 남아 있는 나라들에 대한 집중 지원이 절실하다. ODA를 집행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최근 이들 국가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먼저 1인당 GNI 220달러로 참전국 중 최빈국인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는 6·25 때 3518명의 병력을 파견, 121명이 숨지고 536명이 부상했으면서도 단 한 명의 포로가 없었을 만큼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은 74년 공산화가 된 후 수도 아디스아바바 교외 한 귀퉁이에서 고달픈 노후를 보내고 있다.

KOICA는 2006년 코리아 사파르(한국촌)에 히브레피레 초등학교를 지었다. 컴퓨터 등 현대식 시설과 과학실험 기자재까지 갖춰진 이 학교는 파견된 해외봉사단원의 선진형 학습지도로 현지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우수학교가 됐다.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타개하겠다는 KOICA의 전략은 다른 도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은 수교 이듬해 6·25가 발발하자 보병 1개 대대를 보내 112명의 전사자와 229명의 부상자를 냈다. 한때 아시아 선진국이었던 필리핀에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식량이다. 2년 전 베트남이 식량 수출을 거부하자 대통령이 나서서 읍소까지 했을 정도다. 3모작이 가능하지만 원시적인 정미방식으로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의 안정적인 쌀 확보를 위해, KOICA는 작년부터 4개년 계획으로 5개 주에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지어주고 있다.

이미 시설이 완공된 오로라주의 경우 그곳 RPC에서 도정된 ‘코이카 쌀’이 수도 마닐라의 대형마트에서도 최고 품질로 인기가 높다. 그런가 하면 누에베시아주에선 해외봉사요원의 지도로 생산된 ‘코이카 우유’ ‘코이카 치즈’가 상품화되어 낙농산업이 척박했던 필리핀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중남미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엔 5100명의 참전용사 중 1100여명이 생존해 있다. KOICA는 작년 그곳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고 봉사요원을 파견해 본격적인 원조사업을 시작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참전상이용사와 내전으로 다친 이들을 위해 한-콜우호재활센터도 짓고 있다. 1150만 달러를 들인 이 센터는 2012년에 완공된다. 아울러 콜롬비아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국가계획 수립을 위한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참전 개도국에 대한 원조 규모는 아직도 미흡하다. 에티오피아, 필리핀,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등 5개 개도국에 대한 ODA 규모는 전체의 2%가 채 못된다. 모든 개도국에 골고루 혜택을 줄 수 없다면, 당분간 참전 개도국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ODA 외에도 유상원조와 다른 분야까지 망라해 집중적인 보은 원조를 펼침으로써 이들 나라가 신흥경제국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부축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책무인 동시에 우리의 국격을 확고히 하는 길이다.

윤재석 카피리더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