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푸른 고통
입력 2010-07-07 17:38
몇 년 전 젊은이들을 생각하면서 ‘푸른 고통’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그 시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마음을 내놓고/잎은/괴로웠으리라/뿌리보다 더 괴로웠으리라/쓰디쓴 고통도/희망처럼 푸르러야 했으므로/시퍼렇게 멍울진 허세로/꼭 한 여름만큼만 연인이어야 했으므로/잎은 괴로웠으리라….”
지금 여름의 한가운데 와 있다. 우리 대학 캠퍼스에도 녹색의 열기가 대단하다. 어른거리는 나무 이파리 사이로 걷는 젊은이들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분명, 여름은 젊은이들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오래전부터 대학은 젊은이들의 꿈의 공간이었다. 맘껏 지성과 비전과 사랑과 열정을 발산하는 산뜻한 곳이었다.
대학이 글로벌 시대에 진입하면서 지식기반의 사회, 국제화 세계화 계량화를 뒷받침하는 경제 논리에 밀리는 동안 인문학의 기저는 좁아지고 젊은이들은 가슴과 열정과 지성보다 더 앞서는 현실상황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메마른 고민에 빠져야 했다.
등록금과 취업과 아르바이트, 외국어에 대한 압박, 맘 놓고 맘에 드는 책 한 권 느긋하게 읽을 수 없는 시간의 필름들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젊은이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가끔 표정이 아주 어두운 학생들과 스치거나 마주칠 때가 있다. 그날은 나도 한순간 몹시 우울해진다. 이 찬란한 여름에 무성함과 무관한 깊은 우울의 사정들은 과연 무엇들일까?
그러나, 어떻든 젊은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고 설렌다.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감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현실은 잠시 어두울 수 있지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물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푸르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우선 마음인 잎을 내놓아야 하고, 잎을 내놓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괴로워야 한다. 뿌리보다 더 괴로워야 한다. 삶의 꼭 한 부분, 푸르러야하는 절정 앞에서 그들은 지금 생나무 하나를 잡고 숨 가쁜 씨름을 하고 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하나님이 ‘끝이다’라고 말하시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끝이 아니다. 잎은 더 푸르기 위해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많은 실패 그 끝에 서게 될 때,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조차 쉽게 포기해 버린다. 있는 그대로의 삶만 바라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허약한 변명도 물론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젊은이 각자에게 붙여준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고 미래를 함부로 내동댕이치는 일이 된다.
지금, 여름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그것들을 나도 그들 같은 마음이 되어 생각해 본다.
최문자 총장<협성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