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황제의 귀환
입력 2010-07-07 17:42
‘귀환’이라는 표현은 조금 거창할까? 한국의 최정예 선수 54명이 펼치는 KB국민은행 2010 한국 바둑리그는 신안천일염, 넷마블, 포스코켐텍, 영남일보, KIXX, 하이트진로, 한게임, 티브로드, 충북&건국우유 등 9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팀에 자율지명 선수까지 6명으로 시합은 5판3승으로 승리가 결정된다. 바둑TV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하루에 두 판씩 일요일까지 생방송으로 펼쳐지는 한국리그는 한국 최대 기전인 만큼 ‘별 중의 별들의 전쟁’인 셈이다.
감독제로 진행되는 한국바둑리그에는 서봉수, 차민수 감독을 비롯해 최근 이창호 9단과 동갑내기 기사인 이상훈, 양건 등 젊은 감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선수는 10대 후반과 20대가 주류로 30대 이하를 포함하면 80%를 차지한다. 랭킹 순으로 선수를 선발해 최근 바둑계의 추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젊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기사가 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다. 이미 감독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에 현역 선수로 뛰고 있는 조훈현 9단을 보면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꾸준히 한국바둑리그 선수로 활동했던 조훈현 9단은 2008년 11월부터 2009년 말까지는 바둑리그에서 한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에서 전패를 당한다는 것은 같은 팀의 얼굴을 볼 면목도 없거니와 스스로도 지울 수 없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1970∼80년대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던 조훈현 9단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조훈현 9단은 묵묵히 계속해서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2010년 한국바둑리그에서 다시 위상을 되찾았다. 충북&건국우유팀의 4지명자로 나서 3승1패를 거두고 있다.
얼마전에 벌어졌던 포스코켐텍의 2지명자 백홍석 7단과의 시합에서 조훈현 9단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근 23승 5패로 초절정 기세를 타고 있는 백홍석 7단이었다. 하지만 조훈현 9단은 특유의 속력행마로 우세를 점하며 승리를 거뒀다.
3승1패의 승리로 ‘황제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89년 혈혈단신으로 응창기배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해 카퍼레이드를 벌였던 그다.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황제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대 및 20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금까지 승부를 겨루고 있는 모습은 단지 한두 판을 이기는 것으로 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기사들과 함께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한 팀의 선수로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조훈현 9단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감동을 준다. 살아있는 바둑계의 역사인 조훈현 9단이 지금도 바둑계의 역사를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바둑황제 조훈현 파이팅!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