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깜짝실적’에 힘받아… 현대그룹,외환銀과 결별 수순

입력 2010-07-06 21:50


현대그룹이 외환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하는 등 주채권은행 변경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주채권은행 변경과 재무구조개선약정(MOU) 체결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MOU를 체결하지 않을 경우 제재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 등 현대그룹과 채권단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MOU 체결 시한을 하루 앞둔 이날 외환은행에 대한 대출금 일부 상환 사실을 발표하며 주채권은행 변경을 압박하고 나섰다.

현대그룹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지난달 28일 현대상선이 외환은행에 대출금 400억원을 갚았다”며 “나머지 대출금도 조속히 갚아 외환은행과의 거래관계를 소멸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그룹에 대한 외환은행 여신 규모는 지난 5월 말 현재 16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아 주채권은행을 바꾸고, MOU도 체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새로 선정한 주채권은행으로부터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무구조평가를 받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대그룹 행보의 밑바탕에는 해운업 시황의 본격적인 회복세가 자리 잡고 있다. 현대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실적이 올 들어 크게 개선되면서 MOU 체결 요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서둘러 발표한 현대상선의 2분기 잠정 실적에서 영업이익은 1536억원에 이르렀다. 증권가 예상치인 1040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현대상선은 1분기에도 영업이익 116억원을 기록해 다음달 발표할 예정인 상반기 실적이 흑자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채권단은 회계법인의 검토도 마치지 않은 2분기 실적을 MOU 체결의 변수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 재무구조를 평가한 뒤 결과가 좋지 않다고 사후적으로 대출을 갚아 다른 은행으로부터 재평가 받겠다는 것은 금융질서를 어지럽히고 다른 기업들과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8∼9월은 돼야 현대그룹의 공식적인 상반기 재무제표가 나오는데 그때까지 약정 체결을 미룰 수는 없다. 주채권은행 변경과 MOU 체결은 별개”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금을 모두 갚는다 하더라도 주채권은행 변경은 감독당국과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MOU를 체결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며 “계속 체결을 거부하면 채권단이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채권단은 7일까지 현대그룹이 MOU를 체결하지 않으면 13개 은행으로 구성된 ‘현대계열 채권은행협의회’ 산하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키로 결정했다. 운영위원회에는 외환·산업·신한은행과 농협 등 4곳이 참여한다. 운영위원회는 현대그룹 계열사 전체에 대한 신규 대출 금지와 기존 대출 만기연장 금지 등의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황일송 최정욱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