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유럽 하이웨이로 ‘기적’ 이어간다

입력 2010-07-07 00:38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7일로 개통 40주년을 맞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기념비에 쓰인 글귀다. 올해로 불혹의 나이를 맞는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해 1970년 7월 7일 준공식을 가진 건국 이래 대역사(大役事)였다.

◇428㎞의 대역사=국가기간고속도로 건설추진위원회와 건설계획조사단이 1967년 대국토건설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한강대교 남단에서부터 부산 금정구 구서동까지 428㎞의 구간을 설계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본격화됐다. 67년 국가 예산의 23.6%에 달하는 429억7300만원이 공사 예산으로 잡히면서 야당과 언론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다.

인력과 장비 역시 당시 기준으로 최대 규모였다. 16개 건설사와 육군건설공병단 3개 대대 등 연인원 893만명이 투입됐고, 당시 전국에 있던 민간 건설사 중장비 대부분인 1989대의 최신 중장비가 동원됐다.

막대한 장비와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공기 단축을 위해 겨울에는 얼어붙은 땅 위에 짚을 깔고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지르거나 트럭에 버너를 매달고 반복 운행을 하면서 땅을 녹인 후 지반을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망자도 77명이나 발생할 정도로 막대한 희생을 치른 난공사였다. 서울∼수원(오산), 오산∼대전, 대전∼대구, 대구∼부산 4개 구간으로 나눠진 공사 중 4㎞의 소백산맥이 가로막고 있던 대전∼대구 공사가 가장 험난한 구간이었다. 당시 공사를 책임졌던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은 개통식에 맞추기 위해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공사에 보통 시멘트보다 20배 비싼 조강 시멘트를 사용하는 초강수를 두어 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공사를 25일 만에 끝내고 개통식에 맞춰 공사를 마무리지었다.

◇국토 혁명에서 아시안하이웨이로=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본격적인 고속도로 시대의 단초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고속도로 네트워크는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의 국토간선도로망으로 발전했다. 한국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 개통 다음해인 1971년 655㎞에 불과했던 고속도로는 지난해 말 3776㎞로 크게 늘었고 도로 포장률 역시 같은 기간 14.2%에서 79.2%로 증가했다.

개통 전 서울∼부산 간 15시간이 넘게 걸렸던 통행 시간은 현재 4시간20분으로 크게 줄어들며 국토 물류 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 개통 전인 69년 330만대에 불과했던 고속도로 통행량은 2007년 11억8000만대로 358배나 증가했고 12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보유대수 역시 2008년 11월 1679만대로 급증했다.

수치로 표현된 경제적 효과 역시 직접 고용효과만 연 평균 1112명(3826억6300만원)이고 차량운행 비용절감, 시간가치 비용절감 효과 등 직접효과까지 고려하면 2005년 기준으로 13조5515억원에 달한다.

개통 40주년을 맞은 경부고속도로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92년부터 추진 중인 아시안하이웨이 사업의 일환으로 고속도로 개방화를 추진해 중국, 동남아시아, 남부아시아, 터키 등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노선의 출발지로 기능하게 된다. 또 첨단 IT 기술뿐 아니라 자동차연계기술을 융·복합하는 스마트하이웨이 사업 추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회도 마련하게 된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