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깨끗한 손

입력 2010-07-06 17:36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이변이 있었다. 매년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켰던 아폴로 눈병 환자가 줄어 안과 병원이 한산했으며,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질환인 A형 간염도 3분의 1이나 줄었다. 뿐만 아니라 연중행사로 일어나던 대형 식중독 사고도 보도된 적이 없다. 이와 같이 전염병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신종 인플루엔자로 우리나라에 손 씻기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이 신종 플루 유행 당시 필자를 ‘손 씻기 전도사’로 소개했고, 이로 인해 최근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의료진의 손 씻기가 일상화되고 있다. 필자가 25년 전 미국 브라운대학 연수 시절, 병원 감염 강의 때 있었던 일이다. 미국 교수가 모자, 마스크, 발싸개, 수술복까지 입은 채 중무장을 하고 강의실에 등장했다. 그 다음에는 걸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신생아실을 출입할 때 이렇게 많은 것을 입었지만, 지금은 이 손 하나만 잘 닦으면 병원 감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병원 감염 예방에서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각인시켜주었다.

미국 연수 후 필자는 손 씻기 전도사가 됐다. 세브란스 새 병원을 지을 당시에도 모든 병실마다 세면기를 설치해 손을 쉽게 씻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세브란스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하이파이브(High-Five)’라는 대대적인 손 씻기 운동을 시작했고 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신종 플루 덕분에 병원 내 손 씻기가 쉽게 습관화되었다.

사실 기본일수록 사람들에게 그 중요성을 인식시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기본이 중요하지만 기본을 하찮은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감염 관리에 우수 병원이 되었고 국제환자안전지침에 가장 중요한 병원 감염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JCI(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 재인증도 획득했다. JCI 회장 일행은 신종 플루 유행 시 우리나라를 방문해 버스마다 붙어 있는 손 씻기 포스터를 보고 우리나라를 극찬하기도 했다.

씻기 행위는 성경에선 정결을 의미한다. 레위기 8장 6절에 보면 레위인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는 자격을 위한 준비 행위로 물로 씻는 정결 절차가 진행된다. 요한복음 13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위로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다. 의료인의 손 씻기는 정결과 환자 섬김의 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손 씻기를 통해 정결해진 의사와 간호사의 손은 환자를 감염으로부터 보호받게 하는 가장 훌륭한 섬김이 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손 씻기가 다시 주춤하고 있는 듯하다. 손 씻기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국립병원 외벽에는 30m 초대형 포스터가 있다. ‘Clean Hands Save Lives’(깨끗한 손이 생명을 살린다). 그렇다. 손 씻기는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 철 세브란스병원장

●약력=연세대 의대 교수(소아과학), 대한신생아학회 회장, 의료산업경쟁력포럼 공동대표 역임, 현 세브란스병원장